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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주거·문화·보육 여건 개선, 청년들 정착 도와야
2031
기고자 송미령
중앙SUNDAY 기고 | 2021년 10월 16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포용성장·균형발전연구단장)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첫 50%를 돌파했다. 특히 수도권 유입 인구 중 55.2%가 청년층이다. 젊고 생산성 높은 계층이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찾아 이촌향도한다는 것이 전통적 인구이동 이론임을 상기하면 당연하다. 그러나 선진국 다수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갈망, 내면적 풍성함의 추구 등 탈근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민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이도향촌형 인구이동이 대세다. G8 선진국 그룹에 합류한 우리 사회가 ‘사람은 서울로’라는 오래된 신화가 작동할만큼 아직은 수도권 중심인가라는 씁쓸함과 함께 그렇게 도시로 유입된 인구는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도시에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집 한 채 사기 어렵다지만 농촌에는 빈집 6만여 채가 방치되어 있다. 도시는 지옥철이 문제라지만 농촌에는 100원 택시를 운영할 만큼 밀도가 낮다. 도시는 차서 문제고 농촌은 비어서 문제다. 도시와 농촌의 삶의 질이 모두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이동의 흐름을 거꾸로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상식적 대안이고 해법이리라.


최근 스마트한 청년들은 힙(hip)한 시골살이로 삶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으로 온 도시 청년들은 스마트팜 농부로서, 레스토랑 오너 쉐프로서, 수제 맥줏집 사장으로, 혹은 시골 사는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도전을 진행 중이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도 대학에서 외식을 전공한 청년은 소곡주 지게미로 돈가스를 만들고, 요가가 특기인 청년은 비어(beer) 요가를 본뜬 소곡주 요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민의 전통주 제조기술과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농촌 혁신의 시너지가 창출되고 있다.


안계면처럼 혹은 한산면처럼 삶의 절반은 농업 등 생업을 하며 나머지는 소박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른바 ‘반농반X의 삶’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가 점차 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5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절반은 청년 세대이다. 청년들의 귀농·귀촌은 더없이 소중한 선물처럼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물론 그중 누군가는 농촌에서의 삶에 실망하고 적응하지 못하여 다시 그 삶터를, 일터를 떠날지도 모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7년 국민 5434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민보다 농촌 주민의 삶의 만족도가 5%포인트 더 높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인 항목으로 들어가 정주 만족도를 물으면 농촌의 교육, 정보통신, 보건·복지 및 문화·여가 여건이 도시보다 현격히 불리하다고 느낀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지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서비스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지자체는 고작 6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여건에 민감한 청년 귀농·귀촌인의 경우 10년 이내에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비율이 낮지 않다.


이처럼 청년이 막상 농업에 뛰어들거나 소위 반농반X의 삶을 살기 위해 농업·농촌에 접근했을 때 부딪히는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농업·농촌 진입 초기에 집과 땅을 구하는 일, 취·창업에 필요한 정보와 자금을 얻는 일이 어렵다. 진입 후에는 도시보다 현격히 불리한 생활 인프라와 문화·복지 프로그램 등과 같은 것은 사는 내내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농촌이 다 그렇지 뭐’라고 자조하기보다 청년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때다. 무엇보다 주거, 문화·여가, 보육 등의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청년이 이웃과 함께 부대끼며 아이를 기르고, 영화를 보고, 운동하고 일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정주 여건이 가장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경험과 자본이 취약한 청년에게 청년이 부족한 농촌에서 일과 삶을 권하려 한다면 그들을 응원하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맞춤형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창업 자본을 지원하며, 현장 인턴십과 멘토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농지 및 주택 연계 프로그램, 최소한의 기준으로라도 균형 잡힌 일과 삶의 무대로서의 농업·농촌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생활 SOC가 부족한 농촌을 더 배려하기를 기대한다. 기왕에 존재하는 농촌 서비스 기준과 연계성을 확보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는 단지 농업·농촌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농업을 하고 농촌에 사는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조치이기도 하다. 농업·농촌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길이고 꽉 막힌 도시의 숨통도 터주는 길이다. 국민 모두에게 행복한 삶의 무대를 제공하는 길이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인구이동이 시작됐다. 부족한 청년 인력을 충당하고 그들에게 농촌에서의 행복한 삶의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농촌 속의 행복한 청년이 더 많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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