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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노인과 노인일자리사업,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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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수린

광남일보 기고 | 2022년 2월 10일
김 수 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고령자에게 일자리 또는 사회활동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일자리사업)’은 노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사회서비스 중 하나이다. 노인의 신체 역량이 고려된 활동들로 구성돼 참여부담이 크지 않고 큰 액수는 아닐지라도 일정 기간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노인일자리사업을 단순노무·저임금 일자리, 세금 퍼주기식 사업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아직까지 미비한 노후소득보장체계, 심화되고 있는 고령자 취업난 등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그 순(順)기능을 간과하기 어렵다. 게다가 건강증진에 기여해 의료비를 절감시키거나 사회적 지지망을 유지 또는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니 참여자들이 얻는 이득은 결코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노인일자리사업의 인기는 농촌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노인들이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죄다 몰려가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특히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외국인 인력 수급이 예년과 같지 않아 농촌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에서 일부 농민들 사이에 노인일자리사업은 노동력 부족을 가중시키는 주범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혹자는 ‘일거리가 널려있는 농촌에 과연 노인일자리사업이 필요한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이때 그 ‘일’이라는 것이 근골격계 만성통증을 동반할 정도로 힘들고 고될 수 있으며 소득을 담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가볍게 무시된다.


농촌 노인은 비교적 접근하기 용이한 일거리, 즉 농사일이 주변에 있으니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을지라도 마땅히 그 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농촌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은 정말로 불필요한 것일까. 하지만 실상을 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언하기 어렵다. 우선 농촌에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평균연령은 75세가 넘고 26%에 달하는 80세 이상 초고령 참여자도 증가추세에 있다.


아무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대개 오랜 시간, 상당한 강도의 노동 부담이 발생하는 남의 집 농사일을 하는 것은 체력상 버겁다며 그들이 고개를 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물며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이들의 노동력으로 메우길 바라는 일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사실은 전반적인 복지 기반이 부족한 농촌이야말로 다목적성을 가진 노인일자리사업의 역할이 기대되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실제 농촌 노인일자리사업의 개별 사업단은 홀로 고립되기 쉬운 독거노인을 비롯한 지역 노인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함으로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챙기는 일종의 자조적 돌봄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결석하면 연락하거나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때론 병원을 동행해 주기도 한다. 평생 가까이 살아도 몰랐던 옆 마을 노인을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인일자리사업은 농촌에서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는가. 농촌의 일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노인일자리사업의 많은 부분이 도시를 중심으로 설계돼 아쉽다고 지적한다. 농촌은 1개의 사업 수행기관이 담당해야 할 지역이 광범위해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열악한 교통수단이 노인의 이동성을 더욱 제약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를 위한 차량 운행 등 관련 지원이 부재한 현실이 대표적이다. 신규 사업유형을 개발하거나 모델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농촌에 대한 배려는 충분치 않은데 노인일자리사업에서 최근 강조, 확대 중인 사회서비스형 사업을 예로 들면 농촌에는 수요처가 될만한 공공기관이나 시설이 많지 않아 사업단을 꾸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결국 농촌과 농촌노인의 특성에 보다 더 적합한(rural-sensitive) 사업 설계와 운영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여기에는 현재 농촌 노인일자리사업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유급 자원봉사 성격의 공익활동을 개선하는 것도 포함된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지역민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민인 노인들이 사회공헌적 가치를 지닌 활동을 수행하는 노인일자리사업의 공익활동은 요긴한 지역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의 필요에 조응하는 활동내용 기획과 이를 촉진할 공익성에 기초한 평가체계 및 인센티브 마련, 다양한 활동난이도와 그에 따른 활동수당 세분화를 통한 취약 고령 노인의 접근성 확대 등의 방안이 고민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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