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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자급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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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종인

농민신문 기고 | 2022년 4월 25일
김 종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으로 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국제 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부 국가에 대한 밀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하는 등 밀을 중심으로 국제 곡물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이다. 이에 따라 식량 수급에 관한 국민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선 기간 주요 정당들도 모두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한해 필요한 식량 가운데 과연 어느 정도를 국산으로 충당하고 있을까? 2020년 양정 자료 기준으로 식량자급률은 45.8%였다. 식량자급률은 전 국민이 한해 동안 다양한 형태로 소비하는 식량 총량 가운데 그해에 국내에서 생산한 식량의 총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품목별로 보면 밀·옥수수 등은 자급률이 매우 낮지만, 쌀 자급률이 높아 전체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리는 모양새가 지속되고 있다. 다른 식량작물들의 자급률은 낮지만, 최소한 쌀은 자급한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5년 기준 쌀 식량자급률 평균은 98% 수준이었다. 혹시라도 나머지 2%까지 채워야 완벽하게 자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 무역분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쌀을 매년 40만9000t규모 수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물량만 해도 연간 소비량의 10%에 육박한다. 따라서 쌀 식량자급률이 100%가 되면 오히려 상당한 양의 쌀이 과잉 공급돼 이를 처리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을 해석할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이 또 한가지 있다. 식량자급률이 집계 방식의 특성상 때로는 현상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급표 항목 가운데 ‘감모·기타’의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감모’란 수확과 유통 과정에서 소실되거나 수분 감소 등으로 감소한 물량을 의미한다. ‘기타’는 수급표상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기 위해 수요량을 보정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쌀 감모 비율은 생산량 대비 7∼8%로 알려졌는데, 쌀 수급표상 감모·기타는 최근 10년 기준 생산량 대비 11%에 달했고 2011년에는 20% 수준까지 상승했다. 2011년에는 감모·기타 물량 급증에 따른 수요량 증가로 쌀 식량자급률이 크게 하락했고, 이는 기존에 추진 중이던 정책을 크게 수정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2010년을 기점으로 쌀 재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1년부터 논에 벼가 아닌 타작물을 재배할 때 1㏊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논 소득기반 다양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쌀 식량자급률 하락 등을 이유로 사업규모를 당초의 4분의 1 이하로 크게 축소했다. 물론 작황 악화로 식량자급률이 하락한 것도 사실이나 이 당시의 자급률 하락 배경으로는 감모·기타의 영향이 더욱 크게 작용했다. 통상적인 수준의 감모율을 적용할 경우 2011년과 2012년의 쌀 식량자급률은 94%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자급률은 식량 수급 상황을 가늠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집계 방법의 특성상 식량 수급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때도 있고, 해당 품목의 대내외적인 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해 100% 자급이 오히려 지나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예도 있다. 식량 수급 현황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인 식량자급률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한계점 또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식량자급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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