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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산불 원인 규명,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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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구자춘

동아일보 기고 | 2022년 5월 19일
구 자 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올봄 동해안에서 큰 산불이 났다. 2만3000여 ha에 달하는 엄청난 산림이 화마 피해를 입었다. 산불 이후,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겁다. 합리적 논쟁은 사안을 한발 진전시키지만 소모적 논쟁은 문제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합리적인 논쟁을 위해 공신력 있는 ‘통계’를 빌려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이번 동해안 산불의 주범으로 소나무가 지목되었다. 국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아온 소나무 입장에서는 꽤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소나무가 송진이 있어 불에 잘 타고 이런 소나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불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번 동해안 대형 산불의 원인을 온전히 소나무에만 돌릴 수 있을까.


뭔가 타기 위해서는 탈 물질, 열, 산소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소나무는 탈 물질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건조한 날씨 탓에 열이 쉽게 올랐고 강한 바람이 엄청난 산소를 공급했다. 아궁이에 바짝 마른 풀을 넣고 엄청나게 센 부채질을 한 셈이다. 나무가 물을 더 머금었다면, 바람이 더 약했더라면 불은 이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상청 통계를 보자.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13.3mm의 비가 내렸다. 이는 2019년의 8%, 2020년의 27%에 불과한 양으로, 1973년 전국에 기상관측 장비를 설치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또 산불이 난 날 현장의 바람세기는 초속 25m에 달했다. 이 정도면 12단계 중 10단계에 해당하는 ‘노대바람’으로 나무가 뽑힐 정도란다. 소나무 탓만 하려면 소나무 비중이 가장 높은 충남 태안군에서 산불이 더 많고 잦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다음으로 정부가 헛돈을 써서 산불에 취약한 ‘인공 소나무’ 숲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충분성’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연평균 2만3000ha를 조림해 왔는데 이 중 침엽수와 소나무 비중은 각각 50.6%와 13.7%이다. 지난 20년간 활엽수 조림 면적이 소나무 조림 면적보다 15%나 더 많고, 2000년 동해안 산불지역에 심은 나무도 활엽수가 침엽수보다 1.7배 더 많았다. 그리고 이번 산불피해지 소나무림의 96%는 인공조림이 아닌 대부분 자연적으로 조성된 천연림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기후환경과 토양에 적응해 생성된 숲인 것이다. 또 송이산 가꾸기의 문제도 제기한다. 그런데 2022년 3월 말 현재 울진에서 송이를 재배한다고 경영체 등록을 한 산림 면적은 130ha이고, 지난 10년 ‘송이산 가꾸기’ 사업을 시행한 면적은 421ha에 불과하다. 송이 재배면적은 산불 피해면적의 0.9%, 송이산 가꾸기 면적은 3%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논거를 빌려 올해 동해안 산불의 원인이 소나무와 송이 때문만은 아니며, 인위적으로 소나무림만 만들었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명백해졌다. 이를 계속 논쟁거리로 삼는다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더 큰 파고를 넘어야 한다. 2021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도 이상 고온, 홍수, 건조 피해 등 극한 기후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온과 건조는 산불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대 요소다. 앞으로 동해안 대형 산불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봐야 할지 모른다.


이제 산불이 날 가능성을 사전에 ‘최대한’ 줄이는 방법, 산불이 났을 때 ‘효율적’으로 끄는 방법, 산불이 지나간 자리를 ‘효과적’으로 복구하고 복원할 방법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올 4월, 산림청에서 지자체, 지역주민, 학계, 임업단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산불 피해지 복원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한다고 들었다. 이를 통해 산불 피해지 복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수렴되어 산불의 예방, 진화, 사후관리가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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