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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노인의 ‘정든 마을에서 나이 들기’를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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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수린

광남일보 기고 | 2022년 12월 6일
김 수 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사람들이 꿈꾸는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저마다 떠올리는 바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낯선 병원이나 시설보다는 익숙한 집과 동네에 머물면서 가족, 친구, 이웃 등과 사회적 연결을 유지한 채 지내기를 선호할 것이다. 이를 영어로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라 부르며, ‘정든 마을에서 나이 들기’ 또는 ‘지역사회 계속 거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개념은 1982년 ‘유엔 비엔나 국제고령화 계획’을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노인정책의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당사자인 노인들의 바람도 그렇거니와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인데, 불필요한 고비용의 시설 돌봄을 최대한 미룰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고령화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현 정부 역시 국정과제를 통해 노인의 예방적이고 통합적인 돌봄의 일환으로 집에 머무르며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재가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인들은 정말 이러한 삶을 살고 있을까? 대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요양병원 입원환자 가운데 의학적으로 입원의 필요성이 낮은 사회적 입원 비율이 40%에 가깝거나 이를 초과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을 정도로, 적지 않은 노인이 원치 않는 ‘이주’를 하는 까닭이다. 노인 대다수가 자신이 지내던 집과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길 희망하는 것으로 드러난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생각한다면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이쯤 되면 노년의 소박한, 어찌 보면 당연한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뤄내는 노인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는 농촌 노인에게 더 어려운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농촌 노인은 도시 노인과 비교해 정주기간이 길고 지역에 대한 귀속성이 강하며, 좁은 지역에서의 대면적 관계를 통해 생활상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한다. 노년기에 갑작스러운 입원이나 입소로 정든 지역을 떠나야 할 경우 이들이 체감할 부담이 상당할 걸로 우려되는 이유다.


농촌 노인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필요한 돌봄을 적시에 적절히 받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건강과 기능이 취약해지는 노년기에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자식을 타지에 보내고 홀로 또는 부부만 거주하는 사례가 빈번한 농촌에서, 노인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돌봄의 의미와 중요성은 매우 크다. 그러나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유출은 필요한 돌봄을 제공할 충분한 기관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수요자가 산포해 높은 접근 비용이 요구되는 반면 수익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특성 역시 공급자의 큰 비중인 민간 영리업자들의 유입을 저해했다.


주요 공적 돌봄제도인 장기요양 재가서비스를 예로 들면 농촌의 서비스 공급규모는 노인인구 또는 장기요양등급인정자 수와 비교해서도 도시에 미치지 못한다. 지역 면적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열악해서,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농촌 노인은 물리적 접근성이 양호한 소수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노인이 돌봄을 받기 위해 집이나 마을을 떠날 필요가 없고 가족의 부양부담을 덜어줘 만족감이 높은 제도이지만, 농촌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그 이용이 제약될 수 있는 것이다.


상기 논의는 비단 장기요양 재가서비스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서비스 전반에 걸쳐 농촌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다는 사실과 관련돼 있기 때문인데, 공급자(기관과 인력)의 확보, 수요자의 밀집 수준, 대중교통 상황 등 도시와 농촌의 상이한 서비스 여건에 대한 논의나 고민이 충분치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결국 ‘농촌에 다소 불친절한 서비스’의 형태로 구체화 돼, 사회적 돌봄이 필수적인 농촌 노인의 ‘정든 마을에서 나이 들기’를 위협한다. 이에 정책적으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과제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촌 노인의 현실에 부합하도록 개별 서비스 지침의 검토와 개선이 요구된다. 즉, 농촌의 인구 저밀도화 및 과소화라는 독특한 환경이 서비스 제공 여건의 불리함을 초래해 농촌 노인의 복지를 저해하지 않도록, 지침의 불합리한 부분을 수정·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여기에는 농촌의 높은 서비스 접근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가 포함될 수 있다.


둘째, 농촌 노인의 서비스 수요-공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농촌 노인의 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서비스 종류를 중심으로 공급 증대를 유인할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급주체를 보다 다양화해 돌봄의 공공성 증진과 가용 자원 확대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셋째, 인력 등 서비스 자원이 충분치 않은 농촌에서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는 ‘농촌형 통합서비스’의 기획과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 경우 하나의 기관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방식으로, 개별 노인의 상태와 욕구에 따른 맞춤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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