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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와 도매시장 상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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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23년 4월 10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올해 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산물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과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농산물 유통 디지털전환(DX)과 온라인 거래 촉진에 있다. 개선 방안에는 산지유통센터(APC)를 스마트화하고 생산자조직을 육성해 규모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농산물 거래에 온라인 기업간거래(B2B)를 도입해 유통 효율을 높이고 유통시장 내 경쟁환경을 조성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발표를 통해 정부의 농산물 유통구조에 대한 관심과 개선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도매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유통 주체는 중도매인이다. 우리나라 청과물의 58%는 도매시장에 출하되며, 중도매인들이 이를 소매점과 음식점 등에 판매한다. 전국 32개 도매시장에서 영업하는 수천명의 중도매인이 농산물을 얼마나 많이 취급하고 거래처에 안정적으로 판매하느냐에 따라 도매시장과 산지의 운명이 어느 정도 좌우된다고 봐야 할 정도다.


하지만 점점 중도매인들이 활동하기 어려워져 위기에 처하고 있다. 2020년 도매시장 자료에 따르면 중도매인들의 판매처 가운데 74.6%가 중소 슈퍼마켓, 전통시장 식료품점 같은 소매상이다. 대형 유통업체에는 11.8%를, 가공업체 같은 대형 소비처에는 12.5%를 판매해 소매 중심의 판매처 집중이 심하다.


문제는 중도매인들이 소매상 등 판매처와 외상 거래에 의존해 악성 미수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도매시장법인과의 거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매시장법인에 중도매인 미수금이 쌓여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구매자 등록제와 구매자 전용 카드 거래 등으로 도매시장 거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중도매인들이 겪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도매인 연령은 대부분 60∼80대로 고령화됐고, 후계자가 확보되지 않아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소매점들이 요구하는 소비자 판매 단위, 소포장 납품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이에 중도매인들은 산지가 소포장·가공한 상품을 시장에 출하할 것을 요구하는 추세다.


이제 도매시장은 소분·절단 포장 등 간단한 1차 가공 기능을 제공하지 않으면 소매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일본은 이미 도매시장에서 소포장·가공하고 이를 저장·판매하는 물류센터 기능을 갖춰 특화하는 추세다. 만약 이같은 기능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도매시장은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산지에서도 농산물을 어떻게 상품화해 출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산지 농가와 협동조합, 영농법인, 산지 유통인 모두 이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산지는 소포장, 1차 가공 판매의 거점이 돼야 한다. 정부 지원 APC뿐만 아니라 자생적 APC가 상품화 거점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상품화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상품화 부가가치는 소비지로 이전될 텐데, 그렇게 되면 산지는 단순히 농산물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출하하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면 산지 농산물 브랜드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산지가 농산물 상품화 거점 기능을 수행하면 산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귀농·귀촌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비대면 온라인 직거래 상품 공급에도 도움이 되고, 중도매인의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게 된다.


도매시장에서는 산지로 향한 대형 유통업체를 도매시장으로 다시 유인하기 위해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대형 유통업체가 도매시장을 통해 84.3%의 농산물을 공급받지만 우리나라는 23.5%에 불과하다. 도매시장이 위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산지와 도매시장 상생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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