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세상에서 도시민과 농촌인구는 새로운 경쟁을 시작하는 것일까?
위의 주제로, 지난 달 마지막 주 금요일(2026.02.27.) 충북 청주시 미원면의 동청주교육문화센터에서 KREI리포터 충북지회 간담회가 열렸다. KREI리포터 4기 출범 후 2번째로 열리는 충북지회 간담회였다.
충북지회의 경우, 대부분의 리포터가 이번 4기에서 신규로 위촉됐다. 그렇다 보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KREI리포터의 역할, 그리고 구체적인 KREI리포터 활동 방법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KREI리포터 제도에 대한 소개 및 활동방법 워크숍을 작년 가을부터 매 지역간담회의 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컴퓨터 보다는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충북지회 KREI리포터의 통신기기 사용 현황을 반영해 이번 간담회의 워크숍에서는 스마트폰의 인공지능앱을 이용해 KREI리포터 활동을 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1) 타자로 KREI리포터 리포트를 작성하는 대신에 인공지능과의 대화와 인공지능에의 명령으로 작성하는 법, 2)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를 직접 찾아 정독해 이해하기 보다는 인공지능에게 연구보고서를 요약하게 하여 음성으로 듣는 법 등이 그 예였다.
인공지능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다보니 이 내용이 '현장의 소리'의 주제로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다음은 간담회의 내용이다:
농촌인구에게 생소한 AI라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의 습득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고령자들에게 인공지능은 익숙하지 않은 신기술이다. 특히, 농촌의 고령자에게 이 기술은 도시의 고령자에 비해 더욱 생소하다. 그도 그럴 듯이, 도시의 직업군은 사무 및 행정 일을 많이 포함하며 도시인들은 이에 피기백(piggyback)하여 인공지능의 신기술을 좀 더 쉽게 습득한다. 한편, 컴퓨터와 모니터가 있는 사무책상이 아닌 농작물이 자라는 노지의 현장에서 일 하는 직업의 인구가 대부분인 농촌에서 고령자에게 이런 신기술을 습득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진다.
한편, 인공지능의 분야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진화한다. 이와 속도를 맞추며 이 기술을 습득하고 이에 능숙해지는(literate) 것은 학습자에게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정보화농업인’이란 명목으로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등은 ‘정보화농업인연구회’, ‘정보화농업인연합회’ 등의 농업인 단체를 육성했다. 초창기에 이러한 단체들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제작 및 운영, 마케팅(블로그, 유튜브 등) 등의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에만 해도 이러한 교육의 내용은 신선하고 최첨단의 영역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직거래 등의 유통을 하는 농업인에겐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진부한 지식이다. 어쩌면, 이젠 유행과 트렌드에 약간 뒤쳐진 지식이다.
바쁜 농사일에 틈틈이 짬을 내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네이버예약, 블로그 등을 간신히 관리하고 있었는데, AI가 문득 새롭게 등장하여 미디어와 우리 일상의 대화 주제를 장악하고(예, APEC 정상화의 중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한국 기업에 GPU 26만장 투자 약속) 있다. 이 AI의 인공지능 기술로 우리 농업인이 새롭게 배워서 리포트도 작성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하고, 농업 경영 전략도 세워야 하고, 사업계획서도 작성해야 한다고 하니,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나는 세상에 또 뒤쳐진다라는 무력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컴퓨터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컴퓨터 방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구분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우리 모두 다’라는 조건으로 시대가 변했다.
인터넷의 시대에서 도시인과 동등하게 농촌의 인구가 정보를 습득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려면, 컴퓨터를 소유하여야 하며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 공간을 가져야 하며 (아니면, 컴퓨터를 도서관 등의 공공의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경제적,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여유가 모두에게 있지 않았고 그래서 컴퓨터 방과 컴퓨터를 가진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의 구분에서 많은 도시인이 전자일 때 농촌인구의 대부분은 후자인 경우였다. ‘사랑의 그린PC(복지 사업)’ 등으로 이러한 도시인과 농촌인구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는 그나마 일부 허물어지는 듯 하다.
한편, 인공지능 기술이 주로 사용자의 스마트폰에서 구현되는 점은, 기존의 컴퓨터의 소유여부로 갈라졌던 기존의 디지털 디바이드와는 다른 상황을 초래한다. 컴퓨터와 달리 스마트폰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모든 국민이 소유하고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즉, 물리적 인프라의 측면에서 볼 때, 인공지능의 분야에서 도시인과 농촌인구는 좀 더 같은 출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는 다른 능력이 중요시 된다.
스스로 정보를 잘 찾을 수 있는, 이 많은 정보를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잘 분류할 수 있는, 이를 잘 분석할 수 있는, 그리고 이를 본인의 사업에 잘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기존의 기술에서는 중요했다. 예를 들어, 본인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홍보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기존의 농산물 홍보 예시를 인터넷이라는 미디엄을 사용해 검색하고 (즉, 정보를 잘 찾을 수 있어야 했고), 그 수 많은 예시를 훑어보며 본인이 참고할 만한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고, 전자를 분석하여 (예를 들어, 젊은 소비자층을 타겟으로 하여 본인의 농산물을 감성적인 공감대에서 판매하자는 전략을 세운다고 한다면) 특정 홍보 문구를 도출해낼 것이다.
반면, 인공지능의 영역에서는 위의 검색 능력, 정보 처리 능력, 분석 능력 등등 보다는 사용자의 ‘대화의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마트폰의 제미나이에게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 “제미나이를 잘 활용하려면 무엇을 잘 해야 해?” 그리고, 제미나이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주며 다음의 3가지를 제안했다: 1. ‘맥락(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기; 2. ‘역할’을 부여하기(페르소나); 3. ‘형식’을 구체적으로 지정하기
이를 참고해 제미나이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았다: “안녕, 제미나이. 나는 청주시에서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 사과도 재배하고 말야. 청주시의 이런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사과를 판매하고 싶은데, 이들과 내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들을 공략하는 사과 판매 슬로건을 제시해줄래? 나 보다는 네가 카피라이터이니까 슬로건을 잘 지어낼 수 있을거야. 나는 50대 초반의 농부야. 예전에는 나의 고객들처럼 나도 도시에서 살았어. 짧은 한 문장의 슬로건이면 좋겠어.” (제미나이의 위의 제안대로 이 질문에서 1. 맥락을 설명하고, 2. 제미나이에게 카피라이터라는 페르소나를 부여하고, 3. ‘짧은 한 문장’이라는 결과물의 형식을 구체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제미나이는 이러한 홍보 슬로건을 제시했다: “치열했던 어제의 나에게 주는, 가장 아삭한 응원 한 입.”
농산물 홍보 문구를 도출해내기 위해서 기존의 기술과 인공지능은 다른 접근 방식을 필요로했다. 그리고, 그리고 가장 최첨단의 기술인 후자의 인공지능은 우리 인간이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대화의 기술을 중요시 한다. 농촌인구가 대화를 AI에 잘 활용한다면 도시인에게 뒤쳐졌던 기존의 기술의 디지털 디바이드에서 우위를 새롭게 점령할 수 있지는 않을까?
비인격체인 AI와 사람처럼 대화하기는 아직 어색하다. 그리고, AI의 대답을 농촌사회가 인정할 수 있을까?
이번 KREI리포터 충북지회 간담회에서 리포터들은 본인의 스마트폰에서 제미나이 앱을 실행시켜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모두들 어색해했다. 친한 친구라면 본인의 말이 문법적으로 맞던 틀리던 상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내밷을텐데, 반면 스마트폰에 혼잣말을 하는 것은 매우 어색했다고 말했다.
필자의 경우엔 마을의 주민회의에 참가하여 주민들과 안건을 토의하던 중 현장에서 즉석으로 제미나이에게 안건과 관련된 내용을 물어보고 AI의 제안을 회의에 참여한 주민들과 공유했다. 그러나, 주민회의는 AI의 제안의 내용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 제안을 공유하는 필자의 연령이라던지 마을에서 필자의 지위에 중점을 두었다. (주민회의에서 필자는 연장자가 아니고, 어떠한 직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주민회의는 필자가 시연한 AI의 제안을 단순한 기술 장난(gimmick)으로 취부했다. 농촌사회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활용을 수용하고 인공지능의 제안을 고려하기 보다는 아직은 농촌의 권력자의 의견에 의존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