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경나눔터 농정시선 | 2013년 12월호 | 서 진 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었던 양자 FTA가 주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메가(Mega) FTA이다. Mega-FTA란 이해가 일치하는 두서너 개 국가끼리 하던 종전의 FTA가 아니라 적어도 십수 개 이상의 국가가 모여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거대 FTA를 말한다. 때로는 다자 FTA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과 아세안이 주도하고 있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다.
TPP는 21세기 신 무역규범 정립을 목표로 완전 자유화를 추구,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 타결 TPP의 모태는 2005년 출범한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P4 Agreement)으로 P4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 4개국으로 출발하였다. 2008년 P4내 투자 및 금융서비스 협상이 시작될 때, 미국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TPP로 변경되었다. 이후 호주와 페루, 베트남이 TPP에 참여해 제1차 TPP 협상은 8개국으로 시작되었으며, 계속해서 말레이시아와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해 11개국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2013년 일본이 참여하면서 TPP는 세계 GDP의 약 40%, 세계 무역의 26%를 차지하는 최대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체로 성장하였다. TPP는 기존 FTA에 비해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협상 범위가 포괄적이다.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 투자, 지재권은 물론 전자상거래, 경쟁, 노동, 환경, 규제의 조화 등을 다루고 있다. 차세대 신규 무역 이슈를 포함하여 21세기형 무역협정의 이정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에 따라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은 물론 TPP 역내국 간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과 공급망을 고려하여 완전한 지역무역협정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교역 활성화를 위한 역내국 간 규제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위한 조치도 다루고 있다. 아울러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래에 나타날 이슈에 적절히 대처하고 참가국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 항상 협정문을 수정․보완할 수 있는 살아있는 협정문(living agreement)이라는 점도 TPP의 큰 특징이다. 물론 협상 중인 문서나 자료는 기밀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어 다른 국가로부터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특징이기도 하다. TPP는 금년 말 타결을 목표로 그동안 집중적인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7월 18차 협상 이후 9월과 11월에도 예정에 없던 고위급 실무협상이 개최되었으며, 12월에는 싱가포르에서 TPP 각료회의가 열려 연내 협상 타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연내 타결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와 농산물 관세감축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쌀을 비롯한 5대 민감 농산물에 대하여 예외없는 관세철폐를 고집하고 있는 미국과 이를 방어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재권에 있어서도 미국과 다른 개도국 간에 입장 차이가 크며, 이 밖에 환경과 국영기업, 정부조달에서도 참여국 간 입장 조율이 어려운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럼에도 TPP협상이 최종 타결에 근접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지난 12월의 싱가포르 TPP 각료회의를 마치고 타결 지점(landing zone)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미국 USTR 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기대수준을 얼마나 낮추는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전후 TPP 각료 협상을 한 번 열어 핵심 쟁점에 관한 이견을 최대한 좁힌 뒤에 내년 4월로 예정된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맞춰 TPP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RCEP은 형식상 아세안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TPP, 시장개방 수준은 높아지기 어려운 구조 RCEP은 중국이 제안한 동아시아 FTA(East Asia FTA: EAFTA)와 일본이 제안한 동아시아 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of East Asia: CEPEA)이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ASEAN이 주도하여 출범시킨 아시아판 역내 자유무역협정 추진체이다. 당초 중국이 ASEAN 10개국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3개국을 추가해 소위 ASEAN+3 형태의 EAFTA를 추진하였으나 일본과 ASEAN 일부 국가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여 ASEAN+3에 호주와 뉴질랜드, 인도를 추가한 ASEAN+6 형태의 CEPEA를 추진하면서 EAFTA와 CEPEA는 경합관계가 되었다. 이 사이 ASEAN은 역내에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ASEAN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RCEP을 출범시켰다(2012년 11월). RCEP은 일본이 추구하던 CEPEA와 동일한 ASEAN+6의 형식을 띠고 있어 일본이 ASEAN을 막후에서 움직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중국은 자국이 추구하던 EAFTA가 날아가 버렸으니 RCEP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이 RCEP 출범에 협조한 것은 미국 주도의 TPP가 급속히 아시아지역으로 참여국을 확대하고 있어 이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RCEP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미국이 배제되어 있어 TPP를 견제할 수 있으며, RCEP 출범에 협력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일부 ASEAN 국가의 우려를 잠식시킬 수도 있었다. 나중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자국 중심의 지역 내 무역협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중국을 RCEP 출범에 협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RCEP은 ASEAN이 주도하고 있고 ASEAN은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뒤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4개국에 대해 특별대우를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 자연히 TPP보다 시장개방 수준이나 통합 정도는 느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3국 간 미묘한 갈등 관계도 있으며, 시장개방 속도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인도도 포함되어 출범 초기부터 최종 협상 타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럼에도 RCEP은 2015년 말을 협상 타결 목표로 설정하고, 지난 2013년 9월에 2차 협상을 마무리했다. 현재 상품과 서비스, 투자 등 3개 작업반이 설치되어 있으며, 협상은 작업반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워밍업 중이다. RCEP이 TPP보다 협상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ASEAN과 나머지 6개국 사이엔 개별 FTA가 체결된 상태이다. 따라서 기존 개별 FTA를 중심으로 공통점을 찾는다면 2015년 협상 타결이 무리만은 아니다. 물론 시장개방 수준이 높아지긴 어려울 것이다. 2015년 말을 타결 목표로 한 최종 공식 협상인 10차 협상은 2015년 9월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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