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수축산신문 시론 | 2014년 3월 10일 | 최 세 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남북고위급회담에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7년여만의 회담이기도 하지만 남북한 모두 새로운 지도체제를 갖춘 이후 열리는 첫 공식회담이기 때문이다. 이 회담의 결과는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정세 판단을 위한 가늠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밝힌 이후 이를 구체화 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천하는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어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평화적 연대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는 농업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극동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농업개발과 농업관련산업의 투자협력 수요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볼 때 극동러시아 지역 농업개발 사업은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연해주는 극동러시아에서 농업의 비중이 비교적 큰 지역이다. 그러나 18만 헥타르에 달하는 곡물재배농지의 생산성은 비교적 낮은 수준이며 유휴농지도 17만 헥타르에 달한다. 현재 경작되고 있는 농지와 유휴농지에 선진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경작할 경우 200만 톤 가까운 곡물 생산이 가능하다. 극동러시아의 광활한 농지는 우리의 식량공급기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연해주지역 농업개발 사업은 한·북·러 협력으로도 추진할 수 있다. 러시아의 토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형태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농업협력사업을 통해 생산한 농산물을 도입하면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과 연해주지역은 접해 있고, 나진과 하싼을 연결하는 물류협력사업이 이미 구체화돼 있기 때문에 농업협력 사업의 타당성은 크게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농업협력사업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분야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이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은 동북아시아 지역 식량안보를 증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중·일 3국의 연간 곡물(대두 포함) 수입량은 약 1억 톤에 달한다. 이 가운데 93%는 미주지역에서 도입되고 있다. 지역의 식량안보를 특정 지역의 생산과 공급에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농업분야 유라시아 협력은 지역의 식량안보를 증진시키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
유라시아 경제협력을 통한 중앙아시아 지역 농업개발은 미주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곡물 도입선을 중앙아시아로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일부 국가만을 고려하더라도 농업 생산성 증대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곡물은 연간 3000만 톤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분단으로 인해 대륙으로 통하는 중요한 통로를 잃고 ‘섬’이 됐다. 북한을 통과해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회이다. 농업협력이 그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유라시아지역 농업협력을 통해 동북아 지역의 화해와 안정을 구하고 식량안보를 튼튼히 하는 길을 열 수 있다. 그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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