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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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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농업협력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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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권태진
KREI 논단| 2007년 10월 09일
권 태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서 합의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중 농업관련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5항

-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고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 제7항

-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칠천만 동포의 기대와 우려 가운데 제2차 남북한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평가이다. 다음 달에는 남북총리회담과 국방장관회담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두 회담의 결과를 확인해 보아야 좀 더 분명한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잠정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정상회담 결과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회담 결과를 차분히 분석한 다음 후속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이번 회담의 키워드는 평화와 번영이라고 할 수 있다. 양 정상이 서명한 구체적 합의 사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합의문 제5항에는 남북한 사이에 농업분야 협력을 진행하기로 명기하고 있으며 제7항에는 재난을 당했을 때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경험한 북한 주민이 다시는 그와 같은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우는 일은 그 어떠한 일보다 중요하고 숭고한 일이다. 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에 따라 앞으로 농업분야의 합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방향과 과제를 몇 가지 제시코자 한다.

 

첫째, 남북한 사이에 이미 합의해 놓고도 실천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새로운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전에 이를 우선 실행해야 한다. 남북한은 2005년 8월 개성에서 제1차 남북농업협력위원회를 개최하여 몇 가지 중요한 협력 사항을 합의하고 이를 추진해나가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2년이 넘도록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합의하였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정한 지역의 협동농장을 선정하여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그 성과에 따라 사업을 확대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남측은 육묘시설,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기자재, 배합사료 및 영농기술 등을 지원하며 북측은 남측 전문가와 기술자가 필요한 시기에 해당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2. 현대적인 종자생산 및 가공·처리·보관시설을 지원하는 데 적극 협력한다.

3. 우량한 유전자원의 교환과 육종 및 재배기술, 생물농약의 개발과 생산기술, 농작물 생육예보 및 종합적 병해충 관리체계(IPM) 형성, 남측 농업전문가들의 방문 등 농업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한다.

4. 축산, 과수, 채소, 잠업, 특용작물 등의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발전시켜 나간다.

5. 토지 및 생태환경보호를 위한 양묘장 조성과 산림병해충방제 등 산림자원을 늘려 나가는 데 서로 협력한다. 이를 위해 북측의 동·서부 지역에 각각 1개씩의 양묘장을 조성하되 구체적인 장소는 향후 결정한다.

 

남북한 당국자 사이에 합의된 내용이 실현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측이 약속을 해놓고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남북한이 새로운 상생의 협력시대를 열어가는 마당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대화를 나누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사항은 농업분야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북한의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 없이 구체적인 사업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북한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북한 농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먼저 마련한 다음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구체적인 사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즉, 프로젝트 단위의 협력보다는 프로그램 접근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상회담 합의문 제5항에는 농업,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농업분야의 협력을 추진하되 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강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가령 축산 협력을 추진하되 부산물인 분뇨는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여 유기질 비료를 만든 다음 이를 농작물 재배에 사용한다면 환경을 보호하면서 농업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둘째, 합의문 제5항 가운데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비롯하여 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들 지역은 남북한 사이의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기는 하지만 특구를 통한 경제협력은 개혁과 개방을 확대하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굳이 개혁과 개방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경협을 통해 북한이 자력갱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안타깝게도 농업분야의 경협은 아직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협을 위한 기반조성이 선행된다면 경협의 한 축으로써 협력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농수산물 가공, 잠업(양잠 및 제사), 축산물(양돈, 닭) 생산 및 가공사업, 담배 및 인삼 계약재배, 특구 배후지의 식품 공급을 위한 채소 생산 등은 남북한 양측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사업이다. 다만 농업의 특성상 남측 협력사업자의 통행(특히 개성이나 금강산을 통한 출입국)이 보장되어야만 정상적인 경협을 추진할 수 있다. 또한 남북한 사이에 농축산물 검역 및 통관에 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현재 추진 중인 대북 비료지원과 식량 차관은 중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비료는 인도적 지원 품목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상은 북한의 농업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다. 우리 정부는 1999년 대북 비료 지원을 개시한 이래 매년 30~35만 톤의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해왔다. 정치 상황에 따라 식량 차관이 중단된 경우는 있지만 비료 지원은 중단된 적이 없다. 부족한 식량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 스스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모든 정책의 기본 이념으로 ?顚쨈?.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자는 뜻이다. 모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땐 ‘우리민족끼리’라는 보조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남북한이 힘을 합하여 위기를 극복하자는 뜻이다. 그 안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북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 국민의 뜻도 헤아리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때는 식량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기를 기대한다. 정말 그런 것인지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식량을 지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원한 식량을 분배함에 있어 대가 없이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자력갱생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한 대가로서 식량을 분배된다면 더욱 값진 일이다. 북한은 매년 되풀이 되는 자연재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재해로 인해 파괴된 농업기반을 어떻게 복구할 것이진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남한 국민이 보내준 식량을 이런 일에 사용한다면 굳이 차관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자는 잊지 말기 바란다.

 

넷째, 이번 합의문의 제7항 중에 남북한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는 문구가 있다. 지난해 북한의 대동강 상류 지역에 폭우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 국민은 10만 톤에 달하는 식량을 비롯하여 필요한 물자를 지원한 바 있으며 금년 8월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도 직간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포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북한 당국이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현장을 공개하면서 유독 동포에게 피해 현장을 감출 이유는 없다고 본다. 북한 주민이 재난을 당했을 때 남북한이 피해 상황을 함께 확인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그것이 상부상조가 아니겠는가? 필요하다면 식량 이외에 종자, 비닐, 비료 등의 농자재 지원도 가능하며 수해로 인한 농업기반 복구 지원도 함께 추진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경협이든 인도적 지원이든 사업의 진행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사업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북한이 강조하는 주체농법의 기본 철학이 ‘적지적작 적기적작’이듯이 협력사업자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제 때 사업장을 방문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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