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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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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과 식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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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성훈
KREI 논단| 2008년 6월 5일
김 성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퇴근길에 지하철역으로 바삐 걷다보면 간혹 길에서 필자를 붙잡고 말을 거는 분들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대학생 또래로 보이는데, 첫마디가 “관상이 좋다” 또는 “얼굴을 보니 기가 세어 보이는데, 좋은 기운으로 만들어야 한다” 등이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걸음을 멈추면 최소한 십여 분을 길에서 그냥 허비해야했기에, 요즘은 그냥 미소를 지으며 가는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그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요즘은 가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정말 내가 기가 센 편이고, 관상이 좋은가?”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 때도 있다.  

 

옛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지만, 여러 명이 계속해서 동일한 말을 하면 거짓말도 믿게 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관상 운운한 경우도 이에 해당되는 사례인데, 처음 한 두 명이 필자에게 “기가 세다”거나 “관상이 좋다”라고 말했을 때는 웃어넘겼지만, 그러한 경우를 계속해서 겪다 보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삼인성호”와 식품을 연관시켜보면, W.O.M.(Word of mouth)가 떠오르게 된다.  입소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식품을 비롯한 상품에 대한 평판이 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어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W.O.M.은 모든 상품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상품 정보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거나 상품의 특성이나 효용을 소비하기 전에는 잘 알 수 없는 경우에 더욱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예를 들어, 컴퓨터는 시스템 사양 등의 제품 정보를 소비자들이 구매 이전에 모두 알 수 있기에 W.O.M.의 영향이 작지만, 식당에서 파는 국밥 한 그릇의 맛은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기에 W.O.M.의 영향이 매우 크다.  

 

식품산업만큼 W.O.M.의 영향을 받는 산업도 드물 것이다.  식품이라는 상품이 “먹어 보아야 알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실제로는 소비 행위를 완료하여도 상품의 특성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식품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식품 안전성 문제의 경우, 관련 정보를 확률의 힘을 빌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어느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토론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하였을 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로또에 당첨되어 당첨금을 받으러 가다가 벼락을 맞는 확률과 비교하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을 때, 십수 년 후 광우병에 걸릴 지 아닐 지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상품 소비 이전에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 W.O.M.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식품산업에 있어 W.O.M.은 양날의 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식품에 대한 호의적인 입소문은 시장에서의 큰 성공을 보장하지만, 적대적인 입소문은 대상 상품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최근에는 이러한 W.O.M.의 위력을 감지한 불순한 사람들이 악성소비자(Black consumer)로 나타나기도 한다. 식품 산업에서 W.O.M.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극소화하려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이 쉽지 않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식품 공급자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식품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부 대형 식품매장에서는 “실시간 농장보기” 시스템을 도입하여 소비자가 계란을 구매하기에 앞서 농장에서 닭을 어떻게 사육하고 있는지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계란의 품질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 등이 있다.  다음으로, 정부는 식품공급자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감시․감독하며, 식품 공급자가 식품 관련 정보를 충분히 생성· 전파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소문 내기를 좋아하는 민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농경민족으로 정착생활을 해서 그런지, “누구네 집의 숟가락이 몇 개고, 그 집 둘째 아들의 행실이 어떤지” 등에 대해 금방 소문이 나버렸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정보화 기술(IT)은 식품산업에 대한 W.O.M.의 위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1980년대 초 명동의 조그만 한 분식집에서 팔리던 빨간 국물의 라면이 “틈새라면”이라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급성장하기도 하고, 일개 소비자의 사진이 “새우깡”을 한순간에 “생쥐깡”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지금이야말로 식품산업에 있어서 정보의 생성 및 관리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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