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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식량 파동의 역사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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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세균
중앙SUNDAY| 2008년 6월 15일 제66호
최 세 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00년간 서너 차례 위기, 녹색혁명·식량자급으로 돌파

 

사회가 발전할수록 경제는 서비스와 신기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수많은 식민지 전쟁에서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자원문제가 정책결정자들을 통제해 왔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자원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에너지·광물·곡물 등 모든 자원이 갑자기 동난 것처럼 야단법석이지만 사실 이러한 파동은 반복돼 왔다. 인류는 자원파동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자원의 중요성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곡물은 가장 중요한 자원 가운데 하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권은 물론 사회가 붕괴하기도 한다. 200여 년 전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과잉 인구로 인한 식량 부족은 피할 수 없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녹색혁명 등 생산성 증대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맬서스의 예언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지난 10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전쟁 또는 흉작 등에 의해 심각한 곡물파동이 서너 차례 발생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70년대 초반 곡물가격 폭등이 가장 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곡물파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72∼73년의 곡물파동은 오일 쇼크, 흉작, 옛 소련의 곡물 수입 증가 등이 원인이었다.

 

최근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에 따른 곡물 수요와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곡물파동이 재연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농업 생산성 증대는 둔화되고 소비는 증가해 현재의 식량파동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서너 차례의 심각한 곡물파동기를 제외하면 곡물 수급은 안정되었고 가격은 하락 추세를 보였다. 인류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 발전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농업생산 기반은 복구됐고, 60년대에는 녹색혁명이 꽃을 피워 식량문제를 해결했다.

 

70년대 초 오일쇼크와 곡물파동은 석유·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으나 이를 계기로 곡물 수입국들은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각국은 농업투자를 늘리고 증산정책을 강화했다. 그 결과 농산물 시장은 1980년대 들어 공급과잉 시기로 전환된 이후 이번에 곡물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안정적 구조를 나타냈다.

 

곡물파동의 역사를 보면 최근의 파동도 곧 안정을 찾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인류는 기술개발, 자원의 효율적 이용 등을 통해 이런 사태에 잘 적응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곡물파동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새로운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과거의 파동에 비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최근의 곡물파동은 개도국의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용 소비 증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및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개방 확대, 증산 유인책의 감소 등 소비·공급 측면의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곡물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려면 먼저 공급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UR 협상 등에 의한 농산물 시장개방의 확대는 농산물 증산을 억제하고 경쟁력 있는 국가로 생산이 편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UR 협상에 의해 증산과 관련된 정부 보조금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특히 농산물 수입국의 농민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 때문에 경작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주도의 시장개방 협상이 식량 증산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규범을 만들어 온 데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곡물가격 상승은 시장기능을 작동시켜 생산을 자극할 것이지만 수지가 맞지 않아 버려진 농경지와 미개발지의 경작, 제2의 녹색혁명을 이룰 수 있는 기술개발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장개방으로 점점 설 땅을 잃어가는 개도국 농업인의 영농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종합적인 농촌개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곡물파동이 수요 증가에서 촉발된 점을 고려하면 식생활의 합리화가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 곡물파동은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꿔 기술개발과 생산을 촉진함으로써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류는 식량문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파동의 지속 기간과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식량문제의 본질은 공급에 있지만 석유와 같은 자원고갈 문제는 아니다. 기술개발, 휴경지·미개발지 경작에 대한 투자 등으로 공급을 증대할 수 있다. 인류가 식량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향후 10년 내에 다시 공급과잉을 걱정하는 풍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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