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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스러움'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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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신동헌
농민신문 기고| 2009년  2월  2일
신 동 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설 농촌정보문화센터소장)

 

경북 포항에서 된장을 생산하는 이윤근씨는 참 촌스러운 사람이다. 된장맛이 별건가. 그맛이 그맛일 텐데 우직스럽게 전통된장을 고집한다. 할머니로부터 전수했다며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다. 그때문에 그는 무척 고달프다. 콩은 구룡포산 햇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고, 소금은 수백㎞ 떨어진 전남 신안에서 천일염을 사와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메주를 띄우고 말리는 일부터 간장 담그기까지 할머니에게 전수한 그대로 일일이 챙기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음식은 나도 먹는 것'이라는 촌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촌스럽기로는 경기 광주에서 쌈채소를 생산하는 원희철씨도 뒤지지 않는다. 외모(키 158㎝, 몸무게 62㎏)부터가 그렇다. 그 체구로 어떻게 20년 넘게 유기재배를 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머리 좋은 농업인들은 일반농으로 돌아서 돈깨나 번다는데 그는 지금까지도 병해충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유기재배만이 땅과 물과 사람을 살린다고 굳게 믿고 있다. 농어촌에는 이렇게 '촌스러운' 농어업인들이 구석구석 많이 살고 있다.

 

'촌스럽다'는 말은 지금까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촌(村)'이라는 단어가 주는 시골스러움 때문이었을까. 다분히 농어촌과 농어업인을 낮잡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국어사전에도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로 풀이돼 있다. 지금도 '촌놈'은 욕에 가까운 표현으로 쓰인다. 사실 세련미 없는 어수룩한 시골사람을 의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주먹까지 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촌스럽다'는 표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정립됨이 바람직하다. 경쟁력으로의 탄생이다.

 

이윤근씨의 전통된장이나 원희철씨의 고집스러운 유기농 채소는 '촌스러움'의 장인개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품들이다. 오로지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과 국민건강을 우선시하는 어수룩한 촌스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맑은 실개천, 검은 개펄, 미꾸라지가 사는 논, 정겨운 농어촌도 따지고 보면 촌스럽고 우직한 농어업인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농어촌의 '촌스러움' 그 자체가 자존심이요, 돈이 되는 경쟁력이요, 생명력이다. 그래서 농어촌은 촌스러울수록 경쟁력이 살아난다.

 

최근 들어 '촌스러움'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온라인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촌(村)스러워 미안해요!" 라는 캠페인이 그것이다.

 

"촌스러우면 어떤가요? 그 촌스러움이 여유와 사랑과 희망을 주는 걸요." "우리 농어촌을 사랑해주세요. 아직도 때묻지 않은 이웃들과 녹색환경이 남아 있는 촌이랍니다." "늘 부지런히 일하시는 그분, 촌스러운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습니다."

 

이런 국민의 격려성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촌(村)스럽다'는 단어의 정의를 긍정적·희망적 의미로 고쳐 쓰자는 아고라 청원에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지지 서명을 보내고 있다.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다. 그동안 소외되고 묻혀 있던 '촌스러움'에 대한 가치는 너무나 소중한 농어촌의 보물이다. 농어업인 스스로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유지·발전시키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한우처럼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보고 느낄 때, 우리 농어촌의 경쟁력은 새롭게 피어나게 된다. "촌스러워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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