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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학교, 강점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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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마상진
KREI 논단| 2009년 4월 27일
마 상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지역·학교별 대학수학능력시험성적 분석자료가 공개되었다. 일부 자립형 사립고, 특목고가 위치한 농촌 지역은 예외였지만, 예상대로 도시와 농촌 학교간의 학력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비단 이번 수능성적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이전에 발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한국교육개발원의 '학교교육수준 및 실태분석'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지역간 학력격차의 해소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지난 몇 십년간 교육 당국이 택한 기본 방향은 '규모의 경제' 였다. 농촌 학교 육성을 위한 대표적 정책으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 그리고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농촌 우수고교육성 정책이 있다.

 

이들 정책의 기본 논리는 농촌의 학교를 도시의 학교와 같이 규모화하고, 시설을 갖추어 농촌 학생들도 도시 학생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교육혜택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농어업인 고교생 자녀 학자금 지원, 농촌 출신 대학생 학자금 지원, 농촌학교 학생 급식비 등 교육비 경감을 위한 정책과 학교도서관 및 장서확충 지원 등 교육환경 개선과 같은 외재적인 물질 지원 위주의 정책이 주를 이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가 수많은 학생들을 수용하면서 나이에 따라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연령과 학년 중심의 대중교육체제는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萬古不變의 진리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기본 능력을 가진 노동력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마련된 체제이다. 이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문맹을 탈피시키는 효과도 있었지만, 지식의 획일화와 더불어 교육의 비인간화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 농촌 학교에 대규모 도시 학교에 적합한, 학년 중심의 대중교육 논리를 강요해야 할까?

 

지난 1982년부터 추진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그동안 5,000여개의 농촌 학교가 통폐합되었지만, 여전히 소규모 학교는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이 유지하여 오던 '1면 1교' 원칙도 무너져, 최근 조사에 의하면 면에 학교가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개 면에는 초등학교 본교가 없고, 이 중 13개 면에는 분교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업무계획에서 교육재정 운영의 효율성 증대, 복식수업 및 비전공 교사 해소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지속적으로 농어촌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현재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소규모 학교를 지속적으로 통폐합하여 규모화 하더라도, 농촌 학교가 가진 각종 교육 여건(교사, 교육과정, 교육환경)은 도시 학교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설사 농촌 학교가 도시 학교와 동일한 교육 여건을 갖춘다 할지라도 사교육 등 제반 지역 환경의 차이로 제대로 된 교육 효과를 얻기가 힘들다. 현재와 같은 도시 학교 따라하기 위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먼저 학년에 따른 대중 교육을 수행할 만한 기본 규모(학생수 60명)가 안되는 소규모 학교에 대한 통폐합 정책은 제고되어야 한다. 추가 보완 대책이 마련된다 할지라도, 소규모 학교 통폐합으로 인해 교육재정이 절감된 부분은 고스란히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 분명하다. 전에는 걸어서 가면 되었는데 이제는 읍내에 자리한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50분 넘게 가야한다. 자녀가 아침 저녁으로 한번씩 운행하는 통학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부모는 자가용으로 직접 통학을 시켜야 한다. 경우에 따라 읍내에 하숙을 시켜야 한다. 등교시간만 50분이나 소요되는 지역에서 도시와 같은 학업성취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이러한 농촌 지역에, 자녀를 둔 젊은 귀농부부가 귀농하여 들어와 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 아닐까?

 

이제는 외부시각자의 기준(도시에 비해 농촌 학교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에 근거한 규모화를 통한 교육환경 개선 및 교육비 보조와 같은 물질 위주의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다 지속적이고 내발적 발전의 관점에서 농촌 학교 문제를 바라봐야 할 때이다. 농촌 학교는 도시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점이 있다. 소규모 학급이 대다수인 농촌 학교는 교사 학생간 친밀성, 학생간 친밀성, 지역주민 및 학부모와 교사와의 원활한 인간관계, 학생생활지도의 수월성 등 도시 학교가 가지지 못하는 이상적인 교육을 위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농촌의 소규모 학교는 최근 외국의 공립학교에서 대안운동으로 등장하고 있는 연령통합교육(Multiage Education)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연령통합교육은 한 교실에서 나이 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다. 매년 교사가 바뀌는 학년 중심 교육체제와 달리, 선생님과 학생이 최소 2년 내지 3년간 같은 선생님 밑에서 배우고, 이를 통해 교사와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이 가능 하도록 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깊이있는 관계 맺기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나이에 따라 교과내용이 확연히 달라지지 않고, 첫해 배운 내용을 다음 해에 또 배울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같은 내용을 두 번 접하게 함으로써 이해를 깊이있게 하고, 온전히 습득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먼저 깨우친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학교 통합의 이유 가운데 하나인 현재의 복식수업이 농촌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촌 지역의 열악한 사교육 환경은 역으로 지나친 선행학습으로 압박을 받는 도시 학교와 달리,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농촌 학교 모형으로 정립시킬 필요가 있다.

 

앞으로 농촌 학교 교육 발전을 위한 접근은 도시와의 비교를 통한 결핍 극복의 관점이 아니라, 농촌 학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대다수 농촌 지역에서 학교는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농촌 학교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최근 농민신문의 '농촌학교 희망찾기' 기획에 따라 지역사회와 연계한 농촌 소규모 학교의 성공사례가 보고되고 있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부모, 학교 관계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지역 학교의 교육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학교가 지역 내 다양한 교육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물질 위주의 외부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농촌 학교 특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학교 모형에 기반하여 보다 지속적인 발전의 관점에서 농촌 학교 관련자와 지역 사회가 주체가 되어 교육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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