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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의 정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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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경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뉴스레터 오피니언| 2009년 5월
최 경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국회에서 농업인 정년 법제화가 발의되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보험업계와 농업계의 이해가 대립되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사 입장에서는 사고로 인해 남은 생애기간 잃게 되는 일실(逸失)수입 산정의 기초가 되는 농업인(노동자)의 정년이 늘어나면 그만큼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면 농업인 입장에서는 손해보험사가 약관에 명시한 농업인 정년 60세 기준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손해가 크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의 판례가 있으나 일관되지 않다.

 

선진국, 정년을 연장하는 추세

 

정년(停年)은 "공무원이나 기타 직원이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당연히 퇴직함을 요하는 연령"(停限年齡)이다. 즉 어떤 직무에 종사할 수 있는 연령의 상한을 의미한다.

정년제도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달하면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하고 신규 인력을 확충하여 조직의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다른 하나는 고령 근로자가 그동안 직장과 사회에 기여한 것을 인정하여 고용(소득)을 보장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함께 고려되는 가운데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는 기업과 사회 및 국가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최근에는 후자의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미국은 1966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데 이어 1986년에는 정년제도를 폐지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나이를 이유로 한 해고를 금지하고 있으나, "정년을 시행하려면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 이후로 할 수 있다"고 관련 법 조항을 개정했다. 스페인에서는 65세가 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은퇴하면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일본도 1998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통해 정년을 60세로 정했으며, 최근에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진국들은 이미 고령사회에 대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자고용촉진법(제19조)에서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는 매년 정년제도 운영 현황을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동법 제20조 1항).

 

농업인의 정년 개념 아직 없어

 

정년제도는 사업장 근로자들에 대한 것이다. 자영업자인 농업인에게는 아직 정년 개념이 없다. 농업인 정년 법제화는 타 자영업종과의 형평성이나 실익이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손해보험업계가 농업인 정년을 60세로 보는 데에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2008년 현재 65세 이상 농업경영주가 총 농가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1%이다. 이중 70세 이상도 30.5%나 된다. 이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은퇴농업인이 아닌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의 실태이다. 요즈음 농촌에서는 60세라면 젊은이 축에 속한다.

둘째, 농업인의 정년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행 농정에서도 농업인의 정년을 65세 이상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있다. 농업구조개선을 목표로 추진하는 경영이양직불제는 지급 대상을 65∼70세로 하고 있다. 농지은행사업 중 농지매매사업은 지원자격을 만 60세 이하로 하고 있다. 60세까지는 영농규모 확대를 위해 농지 구입비 지원이 가능하다. 즉 농업인의 60세는 은퇴할 연령이 아니라 영농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연령이다. 농지매매대금의 납부는 75세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상환하면 된다.

셋째, 정부에서는 현재 만 60세로 되어 있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만 65세로 연장하기로 하였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면 보편적으로 65세까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된 1988년에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70세 정도였다. 20여년이 지난 현재는 소득 수준의 향상과 식생활 개선, 의학의 발달 및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 고조 등으로 평균수명이 80세에 달하고 있다. 연금 수급 연령의 연장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이미 농업인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하고 있으며, 일본은 자동차 손해배상 약관을 통해 농업인의 정년 기준을 67세로 하고 있다.

넷째, 현재 손해보험이나 개인연금 상품들의 대부분이 80세 보장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100세까지 보장하는 손해보험 상품도 등장하였다. 이는 보험업계에서도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급격히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령 사회에 걸맞은 정년 설정 필요

 

고령 시대의 정년은 일터에서 강제로 물러나야 할 연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보람과 소득을 얻는 활동이 가능한 최고연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업인 정년을 60세로 보는 손해보험사의 입장은 현실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우려하는 고령사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장기간 경험하며 차분하게 대응했던 것을 우리는 단기간에 감당해야 한다. 그만큼 몇 배 더 힘들고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국가정책은 물론, 민간보험사의 보험상품 개발도 우리나라가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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