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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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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 주택계획, 식량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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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경환
KREI 논단 | 2009년  6월  17일
최 경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6.25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붐세대라고 한다. 대략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말한다. 이들이 태어날 때의 인구정책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로 변해 먹을 것, 입을 것이 변변치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아돌아 골치 덩어리(?)인 쌀은 구경하기도 어려웠고, 해마다 봄이면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꾸리는 1980년대의 구호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산아제한정책이 더 강화된 것이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불임시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자식들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일 하고 있는 이들의 지상과제는 '자녀교육'과 '내집 마련'이었다. 이로 인해 1980년대부터 사교육 및 주택수요가 급증하였다. 이때부터 불붙은 조기유학 및 아파트 투기바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이들의 자녀가 성장하여 결혼하기 시작하는 요즈음은 다(多)출산을 권장하며, 출산장려금까지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 인구를 줄여야 한다던 그동안의 주장은 온데간데 없다. 여하튼 출산장려정책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저출산 고령사회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족계획을 장려하던 국가기관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기관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도 설치되었다. 먹을거리도 넘쳐나서 베이비붐세대가 어렸을 적에 배불리 한번 먹어봤으면 하던 쌀밥은 이제 '찬밥'신세가 되었으며, 지상목표였던 주택문제도 숫자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점에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인구대체 출산률은 2.1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수준을 이미 25년전인 1983년(2.08)에 지나쳤다. 사실 이때부터 인구 정체 또는 감소에 대하여 치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책없이 직면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다. 한 예로 2016년에는 고교 졸업자수가 대입 정원(2009년 기준 약 60만 명)보다 작아질 전망이다. 2000년대 초 우후죽순 개교한 대학들의 상당수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려 하지만 힘이 많이 들고 돈도 얼마나 들지 알 수 없다. 안이한 대처의 응보라고나 할까.

 

이러한 상황은 주택계획이나 식량계획에서도 우려된다. 아직 집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으며, 미분양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과거의 곡창지대들이 대단위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변하고 있다. 푸르른 농작물이 무성해야 할 들판이 회색빛 시멘트 덩어리들이 하늘까지 뒤덮고 있다. 항간에서는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들은 결혼하면 집이 한 채 또는 두 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집장만이 평생 목표였던 베이비붐세대들에 비해 그 자녀들은 결혼만 하면 집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한 자녀 낳기'를 철저하게 지킨 베이비붐세대는 자녀에게 양가로부터 집을 하나씩 물려줄 것이고, 두 자녀인 경우에도 친가 또는 처가로부터 집을 물려줄 것이다. 요즈음에는 주택에 대한 인식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냥 흘려보낼 얘기들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연 주택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것인지 공급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서둘러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베이비붐세대가 어렸을 적에 배불리 먹어봤으면 하던 쌀을 이제 겨우 자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기도 하였지만 1인당 소비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지면적이 좁기 때문에 식량자급은 근본적으로 어려우므로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식량문제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었다. 이론상으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마다 경지면적이 감소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농지가 유휴화 되고 있으며, 일부 농산물들은 과잉생산이 반복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곡물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식량위기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불확실한 국제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본 식량만큼은 적정 수준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량안보를 중시하는 선진국의 식량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식량의 완전 자급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국내외 여건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식량주권을 지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정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인구전망과 식량수요 추정, 그리고 필요한 농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은 인구증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식생활 패턴은 어떻게 변화할지, 이를 위한 농지는 최소한 얼마나 보전해야 하는지, 곡창지대가 계속 시멘트로 뒤덮여도 문제는 없는지에 대하여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앞으로 제2의 '청계천 복원공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후손들의 부담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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