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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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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신동헌
농민신문 기고| 2009년  7월  3일
신 동 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설 농촌정보문화센터소장)

 

지난 5월 경북 칠곡에서 전화가 왔다.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초록솔잎농장 김영애 대표(54)의 반가운 전화 목소리다. 그녀의 최종 졸업장은 초등학교다. 그간 농사지으면서도 향학에 대한 집념만은 포기하지 않아 마침내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대입 검정고시까지 합격한 것이다. "내년엔 대학을 가겠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지금이야 대학생이 넘쳐나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대학에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초등학교 100명 졸업에 1~2명만이 대학을 갈 수 있었을까. 나머지는 대개 도시로 진출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농촌에 주저앉았다. 김대표의 경우가 그랬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 혼자 남의 집 일로 생계를 꾸렸으니 말이다.

 

김대표 인생 파일을 열어 보면 온갖 수료증과 자격증으로 빼곡하다. 여성대학, 주부대학, 예절학교, 새마을교육, 적십자사, 한식과양식 국가자격증, 손님상차림반, 제과제빵, 폐백이바지, 스포츠댄스, 경북벤처농업대학 등이 김대표가 지닌 수료증과 자격증이다. 그런 짬에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정규대학으로의 비상을 꿈꾸는 것이다.

 

요즘 농어촌에는 수많은 ‘김영애’가 있다. 가난이 죄라 운명적으로 농사꾼이 되었고 배움이 짧으니 늘 주변의 보이지 않는 멸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농업인들이다. 이제야 억눌렸던 배움에 대한 열정이 터져 버렸다.

 

청계산 자락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김대원씨(56)는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09학번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39년 만에 대학생이 되었다. 부인과도 약속을 했다. 김씨의 학업이 끝나면 부인이 대학문을 노크하기로. 허브농사를 짓는 조강희씨(54)도 방통대를 거쳐 겨우 지난해 대학원까지 마쳤다.

 

이렇게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농사일로 공부를 미뤘다가 늦깎이로 대학문을 두드리는 농업인들이 의외로 많다. 환영할 만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격려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농업과 농촌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훈장’감이다. 혼자 잘나서 경제대국 13위가 된 것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사고나 질병으로 영농을 계속할 수 없는 농업인을 돕기 위해 지난해부터 영농도우미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농도우미제도의 대상에 만학 농업인을 포함시키면 어떨까.

 

김대표의 경우 남편의 배려로 공부하고 있지만 바쁜 농사철에 빠져나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일이다. 모내기철이나 수확기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허리 한번 못 편다. 낮에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수업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손가락의 관절염과 함께 휘어진 새끼손가락이 농부이자 만학도인 김대표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장학금 또한 이들 만학 농업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될 것이다. 쌀 수십가마를 팔아야 겨우 대학 한학기 수업료가 만들어진다. 자녀 대학도 힘든 판에 연간 1,000만원에 가까운 수업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농사꾼이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적이었지만 이들에게 배움은 정년이 없다. 이들을 통해 농어촌에 젊은 희망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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