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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비극, 아프리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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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허장
KREI 논단| 2010년 1월 28일
허 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월 12일 중남미 아이티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두 주일이 넘었는데 희생자 수는 십만명 단위에서 차이가 날 정도로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은 다리를 절단한 임산부 얘기를 들려주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연인의 마지막 순간을 눈물로 얘기하는 젊은 청년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일이지만 우린 오늘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죄스럽다는 생각조차 든다. 안 그래도 중남미 최빈국에 속하는 아이티는 이제 통째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정의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아이티에 그나마 존재하던 국가 통치시스템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붕괴되었지만, 아프리카 대륙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한 비극이 지속되어 왔다. 아프리카에는 53개의 나라가 있다. 이 가운데 사하라 사막 이남에 48개국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세계 최빈국 대열에 속한다. 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지역에서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가 물론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지만 41%나 된다. 평균수명은 2005년 기준으로 49세에 불과하고 영아사망률은 1천명 당 94명이나 된다. 경제성장은 굼벵이보다 느려서 1960년 이후 1인당 실질소득이 동아시아는 7.85배로 늘어난 반면 아프리카는 1.24배 증가한 것에 그쳤다. 2005년 기준으로 볼 때 사하라 이남 48개국의 경제규모를 모두 합해 6,219억 달러에 불과해 우리나라의 7,869억 달러보다 작다고 한다.

 

인구 10억 명에 가까운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인류의 눈물”이다. 에이즈가 창궐하는 보츠와나는 평균수명이 35세이다. 인구가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인근 농촌에는 아직도 하루 세 차례 1km 가까이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 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국제연합(UN) 기구와 국제은행, 국가별 원조단체, 민간단체(NGO)들이 아프리카에 돈을 쏟아 부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2000년 전후로는 원조가 이들 나라의 빈곤퇴치로 이어지지 않은데 따른 회의감, 즉 선진국의 “원조피로(aid fatigue)”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부각되면서 원조가 다시 크게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위기의 대륙(continent in crisis)”이다.

 

한편 이러한 위기와 비극적 상태를 심화시켜 온 것은 한발, 풍토병과 같은 자연적 재해뿐만이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식민모국의 요구에 의해 조성되어 경제성장과 주민식량 공급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수출지향형 단작 농업, 석유와 다이아몬드와 같은 광물자원의 수출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 정치적 불안정과 인종간 내전 등이 큰 원인이었다. 관료들의 극심한 부패는 “100을 원조하면 20 정도만 실제로 원조된다”는 말을 낳았다. 필자가 킨샤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중앙부처의 차관은 “배가 고프다”는 말로 우회적으로 검은 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잊혔던 아프리카에 대해 본격적으로 원조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2006년 정부는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면서 새천년개발목표를 달성하는데 기여하겠다고 천명하였고, 2009년 여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의 식량안보회의에서는 아프리카 등 식량위기 국가에 대한 긴급지원을 약속하였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포럼에서는 향후 이 지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세 배로 늘이기로 하였다. 우간다와 탄자니아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경상북도 등이 지원하는 농촌개발 사업, 즉 한국형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농촌진흥청은 케냐에 해외농업기술센터를 설치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농업협력사업 발굴을 위하여 6개 기관 합동조사단이 방문했다.

 

정부 각 분야에서, 그리고 농업분야에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ODA 규모가 늘어나고 이제 그러한 관심이 실질적인 원조로 실현될 가능성도 많아졌다. 문제는 여태껏 많은 선진국들과 원조단체들이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엄청난 규모의 개발원조를 해 왔음에도 그 성과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가 어떻게 반면교사로 삼을 것인가이다.

 

적은 돈이라도 꼭 필요한 사업에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그것이 모델이 되어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이를 실천하고 다른 곳까지 파급시키도록 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이들을 지배한 유럽의 선진국, 즉 “식민지 모국”에 대하여 심리적 의존감과 함께 거부감도 가지고 있다. 최근 엄청난 물량 공세로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환심을 끌어내고 있는 중국은 그러나 기술전수는 도외시하고 자국민들을 인해전술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토착 생필품 생산업체와 경공업 부문을 초토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모두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스승”이 될 것이다. 우리의 방식을 찾아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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