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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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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배종하
농수축산신문 시론| 2010년  4월  6일
 배 종 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우리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 농업소득의 반 이상을 쌀이 차지했으나 이제는 47%에 불과하고 농가소득에서는 겨우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은 여전히 우리 농업에서 제일 큰 품목이고 전체 농가의 3분의 2가 쌀농사를 짓고 있으며 단순히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떠나서 쌀이 우리 농업에 가지는 상징성은 다른 어떤 품목과도 비교할 수 없다.

 

  반면 소비측면에서 쌀 소비는 점점 줄어들어 연간 1인당 소비량이 75kg이하로 떨어졌다.  쌀과 같은 기본식량은 소비량이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생산이 조금 늘어나도 남는 물량이 갈 데 없어 가격이 폭락한다. 정부는 수급을 적정수준에서 맞추기 위해 재배면적을 줄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 2001년과 2009년 두 차례 수확기에 가격이 폭락하여 큰 홍역을 겪었다. 이 뿐만 아니라 수입쌀은 계속 밀려와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고 있고 올해에도 관세화 논쟁이 상당히 뜨거워질 것 같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최종수확량을 사전에 미리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에도 농가들은 수확기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가 복잡한 만큼 시각도 다양하고 해법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시점에서 ‘쌀을 시장에 맡길 수 있는가’하는 화두를 한 번 던져보고 싶다.

 

  최근 수년간 정부의 정책은 시장경제, 시장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수매제도를 없애고 공공비축량 물량을 고정시키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정부 정책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서 수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 정부가 뒷짐 지고 있을 수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생산농가들이 아우성을 치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비상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애초부터 시장경제에 맡긴다는 정책방향을 수정할 필요는 없는 것인지? 시장에 맡긴다고 하면 생산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관세화에 대해 불안해하는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무언가 최소한의 버팀목은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생산자들은 어느 정도 안정된 경영을 할 수 있다. 물론 자기 생산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농업인들은 시장에 관한 완벽한 정보도 없고 생산물량을 철저하게 조절할 수도 없어 높은 위험부담을 안고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상상황 속에서는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 것이 생산자들을 안심시키는 일이며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의 농업정책을 보면 경제논리도 중요하지만 정치사회적 고려도 정책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만큼 농촌사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쌀은 ‘경제재(經濟財)가 아니라 정치재(政治財)’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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