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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농업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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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신동헌
농경나눔터 농정포커스 | 2010년 11월호
신 동 헌   (도시농업포럼 대표)

 

‘미셸텃밭’은 지난 해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갈아엎어서 만들어 낸 걸작텃밭이다. 상추, 오이, 브로콜리, 양파, 고구마 등 55가지 채소를 심었다. 그녀는 밴크로프트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신토불이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체험시켰다. 괭이로 잔디를 걷어내어 텃밭을 만드는 터프한 모습이나 텃밭에 무릎을 대고 머리를 숙여 채소를 기르는 모습을 보면 ‘대통령 부인 맞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역동적인 데다 감동까지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비만 퇴치 운동인 “Let’s Move!(움직입시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most powerful woman)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우리 집 먹을거리는 우리가 직접 챙겨야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요즘 부쩍 높아졌다. 김치 전쟁을 치른 후는 더욱 그랬다. 올가을 상추 4kg 한 상자가 10만 원 이상이 되어 금상추로 둔갑하기도 했고, 배추 1통이 1만 5,000원까지 치솟는 이변이 여러 날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배추가 사회를 불안에 휩싸이게 한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여기저기 서 “농사나 지어볼까”하는 수군거림도 적지 않게 들렸다. 원래 도시농업의 시작은 소시민적 발상과 필요에 의해서였다. ‘우리 집 먹을거리는 우리가 직접 챙긴다’는 GIY(Grow It Yourself) 정신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던 88올림픽 이후, 서울도심 주부들이 하나 둘 아파트를 뛰쳐나와 텃밭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주변 노는 자투리땅이나 주말농장에 상추나 고추, 배추 등 비교적 기르기 쉬운 채소부터 기르면서 텃밭을 가까이했다.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자연을 접하면서 차츰 스스로에게 부족한 ‘녹색결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농약공포’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도시농업에 깊숙이 빠져 들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도시농업은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일단 도시농업을 즐기는 농사꾼들이 대거 전국 대도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주말농장만 해도 25농가에 9,000구좌에 이른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도시농업을 즐기면서 도시농업을 배운다. 여기저기 상자텃밭 분양 이벤트가 자주 열린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올해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하여 도시농업기본법 제정을 서두르고 경기도는 올해 도시농업네트워크라는 관민단체를 만들고 도 조례안을 조만간 통과시키는 일정을 잡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보다 몇 배 앞선다. 기반도 탄탄하다. 미국의 경우는 LA카운티에만 70여 개의 커뮤니티가든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미셸텃밭’ 덕분에 미국 농무부에도 텃밭이 만들어지고, 그 여파는 올해 한국에 있는 대사관저에도 ‘피플스가든’을 탄생시켰다. 영국은 런던시민의 14%가 도시농업을 즐긴다고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2012개의 시민텃밭을 조성할 예정이다. 독일의 자랑 클라인가르텐은 100만 개를 넘어섰고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1989년 특정농지대부법과 1990년 시민농원정비촉진법을 만들어 일본 시민농원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도시가 농업을 품어야

세계 각국이 텃밭농사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도시농업이 도시락(都市樂)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도시농업이 지닌 기능 중에 즐거움, 락(樂)이 있다. 그 중 첫째는 먹는 즐거움이다. 어릴 적 텃밭모습을 기억해 보자. 바로 따고 캐낸 농산물을 바로바로 즐겼던 그 때가 우리에게는 있었다. 요즘은 복고풍 먹을거리를 즐기는 도시인들도 부쩍 많아졌다. 방금 딴 오이로 오이냉채를 만들고, 방금 캐낸 감자와 고구마를 쪄서 도시인들이 먹는다. 키친가든의 실현이다.

둘째는 기르는 즐거움이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 파란 싹이 돋아난다. 물을 주면 잎이 커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 알의 씨앗으로 100배 수확의 기쁨을 맛본다. 새록새록한 인생의 묘미를 텃밭에서 얻는 것이다. 흙을 만지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확 달아난다고 도시농사꾼들은 스스럼없이 말한다. 셋째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자연, 흙, 채소로부터 배운다. 또한 소통을 통해서 이웃을 얻고, 삶의 희망을 얻는다.

이제까지 농업이 도시를 먹여 살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은 늘 멸시의 대상이었다. 힘없는 사람이 농사를 지었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농부가 되었다. 조선시대 정약용은 말했다. 존불여사(尊不如士), 이불여상(利不如商)이라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농민은 선비 이상 존경을 받을 수 없고 상인과 돈 벌기를 겨뤄도 어림없다는 이야기다. 도시가 농업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민의 흘린 땀과 노고에 감사하는 일, 베란다나 옥상텃밭에 고추 한포기 올리는 일 하나하나가 도시가 농업을 품어 주는 일이다. 이런 배려가 있어야 도시와 농업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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