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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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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산지유통 개선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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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경나눔터 농정포커스 | 2011년 2월호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

 

필자는 농산물 산지유통 전문가로서 산지의 농산물 생산과 유통현장을 20여년 다녀보았다.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태백시 매봉산 1,200고지 꼭대기와 도암댐 수몰 이주민들이 만들어낸 귀네미골의 가파른 산비탈, 대관령의 안반덕과 정선의 민둥산, 대화, 방림, 하장 배추밭을 비롯해 웬만한 주산지는 거의 다 가보았다. 배추뿐만 아니라 대부분 품목의 산지유통 현장도 자주 방문했다.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은 고랭지배추 생산현장이다. 십수 년 전 태백시 귀네미골 가파른 산비탈, 물론 중간중간 운송용 도로가 만들어져 있지만 똑바로 서있기도 힘든 가파른 비탈에서 배추농사가 되겠나 싶을 정도였다. 필자는 배추수확체험을 위해 깜깜한 새벽 5톤차를 이용해 어둠을 밝힌 산비탈 배추밭에서 산지유통인들과 배추수확을 해 보았다. 지금은 수확 후 박스에 담아 차에 실어 운반하고 있지만, 당시엔 보통 여자인부들이 배추 밑동을 칼로 따고 남자들이 지게로 운반해 트럭적재 전문가가 신문지에 싼 낱개 배추를 적재함에 산처럼 쌓아 덮고 소비지 도매시장에 운반했다.

배추 출하시즌에 산지유통인들이 장기체류하는 여관에서 산지유통인 고수들이 밤새도록 전국의 도매시장 상황과 배추출하대수를 전화로 일일이 체크하고 원하는 가격을 받기 위해 출하물량을 조정하는 현장을 보았다. 그들의 전문성과 동물적 감각에 놀란 바 있다.

 

산지유통인은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

지난해 말 배추파동을 계기로 마치 베일에 가려진 산지유통인들의 역할과 중요성이 농산물유통업계뿐 아니라 웬만한 정치인, 공무원, 소비자에게 순식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배추파동이 산지유통인들에겐 오히려 약이 되고 좋은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만일 언론이나 행정계통에서 산지유통인에 대한 정보가 왜곡되어 전달되었더라면 배추파동의 공적이 되었거나 또는 파편에 맞아 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격변동 리스크 부담, 농가를 대신한 재배관리와 수확작업 등 긍정적인 역할이 상황을 반전시킨 셈이다.

가격변동리스크가 큰 배추, 무, 양배추, 양상추, 당근, 수박, 감자, 양파 등 엽근채류의 50~90%를 산지유통인들이 수확 전 농가로부터 밭떼기(포전거래)하여 산지유통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농가를 대신해 농작물의 재배관리와 수확작업을 담당함으로써 ‘누가 진정 농사꾼이냐’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농산물유통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농산물유통정책에 얼마나 적극적인 파트너로 임해 왔는가, 유통주체로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모해 왔는가는 냉정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

 

바람직한 유통형태

필자는 십수 년 전부터 산지유통을 협동조합과 민간유통기업이 양분하여 담당함으로써 선진적인 유통체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협동조합은 농민의 조합으로서 산지유통부터 철저히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 기반으로 도매유통과 가공사업 등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소매유통 참여 확대는 후순위다.

협동조합의 첫 번째 목적은 공동출하를 통해 거래교섭력을 발휘하는 데 있으므로, 산지유통을 조직화, 규모화하고 마케팅 전문가들을 적극 양성하여 대형유통업체 바이어들과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지농협들도 신용과 경제를 실질적으로 분리해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가진 인력과 조직으로 판매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거래교섭력은 마케터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품목별 규모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권역별, 품목별 연합마케팅사업을 적극 확대하는 제도적, 실질적 조치를 강구하고 이 사업을 독립적, 조직적, 사업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합공동사업법인 육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나아가 농협의 모든 산지유통, 가공사업 등에서 철저히 협동조합기업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유통 및 가공사업에서 취급하는 농산물의 지역적 취급범위도 관내를 벗어나 품목과 경우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배추, 무의 가공업체 납품인 경우 연중납품을 요구할 경우 전국적인 수집공급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전국의 산지유통시설, 농협 가공공장을 권역, 부류에 따라 운영을 통합하고 유통시설, 가공공장 설치 운영 조합들이 공동출자로 마케팅 전문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다공장 시스템으로 갈 필요가 있다.

배추파동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밭떼기는 농업생산인력의 고령화와 부족이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이다. 산지농협은 향후 생산단계부터 직접 관여하는 재배관리와 수확작업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를 위해 시스템 개선해야

산지유통인도 변해야 한다. 산지유통인들도 제대로 유통주체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떠돌이 유통활동, 얼굴없는 유통주체를 청산하고 민간 산지유통기업으로 실체를 가져야 한다. 농가와의 포전거래도 구두가 아닌 표준계약서로 서면계약을 통해 서로의 계약을 준수하여 신뢰를 받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또한 법인화를 통해 경영의 효율성, 전문성도 높이고 자금운영의 불안정성, 취약성도 보완해야 한다.

저온저장고를 비롯해 유통시설을 갖추어 출하조절을 통해 시간효용을 높이는 선진적인 유통을 해야 한다. 가공업체, 급식업체, 외식업체, 소매업체 등 최종수요처와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원하는 형태와 방식의 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가공, 전처리, 포장을 함으로써 형태효용을 높여 부가가치를 높일 필요도 있다. 협동조합, 영농조합, 산지유통인 조직들이 경우에 따라 상호 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제휴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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