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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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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호
농민신문 전문가의 눈 | 2012년 3월 9일
김 정 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바야흐로 에프티에이(FTA; 자유무역협정) 시대다. 우리나라가 거대 경제권인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과의 FTA를 발효시키고, 또 중국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졸지에 주변국으로부터 ‘FTA 허브’라는 칭송(?)을 얻게 되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FTA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농업 부문의 시장개방 속도에 대해서는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장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우리 농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농업 비중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1995년에 5.4%에서 2010년에는 2.2%로 빠르게 감소하였다. 물론 나라경제 규모가 커진 영향이 크지만, 농업생산이 절대적으로 위축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즉 1996년부터 농산물 실질가격이 정체 내지 감소 추세로 전환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중간투입재비가 빠르게 증가하여 농업부가가치가 21∼22조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원예·특용작물과 축산 등 고부가가치 작목이 농업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런데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농업생산만 위축된 것인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괜찮은가? 근년의 FTA 협상 과정에서도 산업 피해가 강조되다 보니 농업계조차 다원적 기능을 잊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우루과이라운드(UR) 때는 ‘비교역적 기능(NTC)’이라는 용어를 창안해 낼 정도로 격한 논쟁을 펼치고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때는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 개념을 정립시켰는데, 이런 국제적 논의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농정 당국도 어정쩡하게 망각 습성으로 돌리는 느낌이다.

  

  시장개방 영향이 가장 큰 농업이 일반경종이듯이 다원적 기능도 영향이 컸다. 단적으로 경지이용면적이 1995년 220만ha에서 2010년 182만ha로 감소하여 15년 동안에 17%나 줄어들었는데, 산업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5% 이상 빠른 속도인 셈이다. 이렇게 농작물 재배면적이 줄어 농업생산액이 감소한 만큼 직접적으로는 농업소득이 줄고 농가소득이 감소했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국민에게 제공되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도 감소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논농사를 따져 보자. 벼 재배면적은 1995년에 106만ha에서 2010년에 89만ha로 15% 가량 줄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1995년에 논농사의 공익적 가치를 추정한 금액은 7조 8천억원으로 당시 쌀 생산액에 근접(약 88%)하는 수준이었다. 2010년에 농식품부가 추계한 쌀 생산액이 6조 8천억원인데, 벼농사의 공익적 가치를 재배면적으로 환산하면 쌀 생산액과 비등한 금액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벼농사는 연간 약 2천만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1천 4백만톤의 산소를 배출하는 공기정화 기능 외에 토양 보전, 지하수 함양, 홍수 조절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란 농업이 유지됨으로써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촌경관 제공, 전통문화 계승 등의 외부경제 효과를 말한다. UR 때는 농산물 수입국들이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논리로 다원적 기능을 주장했지만, 작금에는 선진국들도 국내농업 유지를 위한 이론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조건불리지역 농업을 유지하고 친환경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직접지불제의 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에 논농업 직불제를 도입하였고, 금년부터는 밭농업 직불제가 시행된다. 이들 직불제는 시장개방에 따른 소득보전 목적이지만, 향후에는 경종농업의 기초소득 보장제도로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는 장기적인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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