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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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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발리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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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주호
농경나눔터 농정시선 |  2013년 12월호
송 주 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인도네시아 발리는 "세계의 아침"이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깨끗한 휴양지이며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이다. 처음 가 보는 12월의 발리는 무척 뜨거웠다. 원래 일 년 내내 더운 지역이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 159개 WTO 회원국이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탓에 더 뜨겁게 느껴졌나 보다.

WTO 미래는 발리 각료회의에 달려
지난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한 WTO/DDA 협상은 12년째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하고 있었다. 2008년 여름에 타결될 뻔했던 DDA 협상은 그 이후 세계경제가 급랭되면서 보호주의와 지역 간 자유무역협정의 만연으로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체계의 위협을 겪고 있었다. UR 협상까지만 해도 미국과 EU 등 선진국 중심으로 전 세계 무역협상이 진행되어 왔다면, 이번 DDA 협상에서는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 인도 그리고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들이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무역협상의 이슈마다 선진국들과 의견대립을 보이면서 협상 타결이 무척 어려워졌다. 이에 WTO는 2011년의 8차 각료회의에서 일괄타결 원칙을 포기하고 쟁점이 적은 분야들만 우선 조기에 타결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번 2013년의 9차 각료회의에서는 무역원활화와 농업 분야 일부, 그리고 최빈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의 세 가지 분야를 조기타결 대상 분야로 지정하였다. 그동안 제네바에서 각국 대표단과 치열한 협상을 벌여왔지만 무역원활화와 농업 분야 식량안보를 위한 공공비축 허용 관련 쟁점을 해소 못한 채 발리에서의 정치적 타결로 공은 넘겨진 상황이었다. 이번 발리에서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DDA 협상은 폐기되고, WTO의 앞날도 위태로울 것이란 위기의식이 모든 회원국 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극적 타결된 스몰 패키지(small package)
12월 3일부터 시작된 발리 각료회의의 개막식 연설에서 인도네시아의 유도요노 대통령은 󰡐발리는 기후변화 협약과 APEC 회의가 성공적으로 종료된 곳󰡑이라면서 󰡐WTO 각료회의도 잘 될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웠으며, 이번 각료회의 의장을 맡은 인도네시아 통상장관 지타 위르자완은 󰡐이번 회의가 결렬되면 비극이 될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큰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성공적인 결과 도출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리틀 오바마라고 불릴 만큼 키 크고 영어에도 능통하며 잘생긴 이 인도네시아 장관은 인도네시아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각료회의에서의 마지막 담판은 진통의 연속이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식량안보에 관한 문제였다. 인도를 포함한 G33 국가에서 제안한 이 내용은 개도국이 식량안보를 위해 시장가격보다 높은 관리가격으로 주곡을 수매해서 비축한 다음, 싼 가격으로 서민들에게 방출하는 정책을 허용보조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 제안은 사실 2008년도의 DDA 농업 모델리티 4차 수정안에 이미 제시되어 있고 쟁점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막상 조기수확 안건으로 제시되자,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 제도가 국내 생산을 증대시켜 무역을 왜곡시킬 수 있다면서 4년 정도의 한시적인 기간만 인정하고 그 이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처음 4일간은 미국과 인도 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어 평행선을 달렸다. 이러다간 발리 각료회의도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였다. 하지만 회의 일정을 하루 연기하면서 마라톤 회담이 이어지고, 항구적인 해법을 만들 때까지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선에서 마지막 날 극적으로 타결이 이루어졌다. 식량안보 문제에 합의가 도출되면서 다른 분야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고 결국 발리 각료회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번 발리 각료회의에서 농업 분야에서는 식량안보를 위한 공공비축, TRQ 미소진율 제고 방안, 수출경쟁에 관한 각료선언 등이 타결되었는데 사실상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별로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DDA 협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해
이번 발리 각료회의의 성공으로 일단 WTO 체제는 당분간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이며 브라질 출신의 신임 WTO 사무총장 아제베도의 리더십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WTO 각료들은 앞으로 12개월 이내에 DDA 협상의 잔여 쟁점들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작업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다. 따라서 내년도에는 또 숨가쁜 협상 일정들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리에서 보듯이 다자간 무역협상은 회원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이번에 발리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DDA 협상이라는 전체 틀에서 볼 때 쟁점이 별로 없던 작은 분야임에도 막판에 가까스로 타협이 되었는데, DDA 협상의 본래 핵심 내용인 농산물과 공산품에서의 관세와 보조금 감축, 그리고 서비스 협상과 원산지 규정 등 선진국과 개도국 간, 그리고 수출국과 수입국 간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항들에 대해서는 전체 타결을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은 요즘 환태평양국가들과 TPP 협상을 진행 중에 있고, EU와는 별도의 TPIP라는 지역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어 DDA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형편이다.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므로 모든 WTO 회원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DDA 협상보다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소수의 국가들끼리의 지역무역협정이 더 타결하기 쉽고 효과도 클 것이라는 기대는 발리 각료회담의 성공에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WTO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우선 몇 년은 안정된 일거리가 생겼다고 자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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