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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을 통해 본 개방화시대의 우리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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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지성태

 

KREI 논단 | 2014년 8월 6일
지 성 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연일 역대 최다 누적 관객 수 기록을 갱신하며 우리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가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우들의 열연, 작품의 완성도와 스펙터클한 볼거리는 기본일 테고,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흠모하고 있는 영웅 이순신의 불굴의 투지를 스크린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살아가며 그를 닮은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보호해주고 대변해주길 바라는 현대인의 염원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이러한 심리는 비단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쟁과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사회 각 부문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FTA 체결에 따른 농산물시장개방화 추세 속에서 우리의 114만 농가가 여러 농산물 수출국들과 경쟁하고 있는 현실이 명량(울돌목)에서 단 12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의 적 함대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과 오버랩 되는 이유이다. 미국, EU 등 FTA 기체결국들은 이미 아군 진지 깊숙이 들어와 그 영역을 점차 확장하고 있고, 더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압도적 규모의 중국이라는 적 군함이 또 한 차례의 대접전을 예고하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다수의 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계는 국내 농산물시장을 비교적 잘 방어했다. 하지만 향후 개방화 폭 확대에 따른 농산물 수입 증가와 그로 인해 점차 가시화될 국내 농업의 피해 확산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14년 상반기(1~6월)만 놓고 보더라도, 전체 농산물 수입액은 157.7억 달러로 평년(이전 5개년 평균) 대비 17.3% 증가함으로써 꾸준한 증가추세를 이어갔다. 전체 농산물 수입액의 56.4%를 차지하는 FTA 체결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88.9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평년 대비 22.3% 증가했다.

시장개방화 진전으로 우리 농업이 받게 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발휘했던 지략과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첫째, 출전에 앞서 군함과 무기를 정비하는 것과 같이, FTA 국내보완대책에 대한 개선을 통해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개별 사업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피해보전직접지불제, 폐업지원제와 같이 타깃이 명확한 ‘병기’를 보완하여 그 파급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더욱이 한․중 FTA 체결을 앞둔 상황에서 기존 전략과 전술에 대한 재정비와 함께 종합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이순신 장군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수적인 열세로 위축된 장병들의 용기를 북돋아 결국 승리로 이끈 것처럼, 한국 농업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우리 농업계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패배의식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했듯이, 수입개방에 직면한 우리 농업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나아가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死必卽生)”의 결연한 의지도 필요하다.

셋째,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용기는 결국 백성을 위하는 진정성에서 비롯되었듯이, 우리 농업인과 농업의 발전을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시장개방화 대응방안을 고민할 때 비로소 부정을 긍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 개방농정시대 농업인이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수립 및 집행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갈등은 최소화되고 정책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가 영화 ‘명량’이 농업계 종사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농업계의 ‘이순신’을 누가 자처할 것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현재 한국 농업이 직면한 개방화의 위기를 단칼에 해소시켜 줄 영웅을 찾기란 어렵다. 대신 학계, 농업인, 정책당국 등 농업계 전체가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면, 1인의 영웅을 능가하는 훌륭한 대응책을 마련하여 이 위기를 보다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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