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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다리 분질러 대박 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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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강원도민일보 기고 | 2017년 5월 4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선택(?)은 대형마트에서 가성비 좋은 상품을 고르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딱 대형마트 크기의 전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새로운 생활양식을 찾아보라는 귀농귀촌 박람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다. 귀농귀촌 박람회는, 그 형식이 이미 표피적인 정보 전달을 예정한다는 점에서, 뻔한 노릇이다. 물론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고 타박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박람회 형식으로라도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나 저간의 사정을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국민 다수에게 농업이나 농촌은 너무 생경한 것이 되었으니 박람회가 조금은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역시나 문제가 없지는 않은 행사였다.
 

올해 귀농귀촌 박람회는 ‘청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연히 그럴 만한 기획이었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인데,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은가? 가구주 연령이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 수가 고작 1만 4000여 가구, 전국 농가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시라. 13%가 아니라 1.3%라는 비율을.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박람회 성격을 대표하는 주제어  “4차산업혁명, 청년 농부가 이끈다!” 앞에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귀농귀촌 박람회가 열리던 때 나는 충청도 어느 농장에서 쉼 없이 쌈채소를 수확하며 농사일을 배우는 젊은 귀농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귀농하여 자리 잡은 지 10년이 넘은 40대 중반 농민의 하소연을 들었다. 매입하기에는 농지 가격이 너무 높고, 농지를 임차해도 농산물 가격이 낮아 임차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4차산업혁명과 청년 농부를 연결짓지 못하는 건, 내가 과문한 탓일까? 아니면, 그런 언사는 그저 말 좋아하는 이들의 사치일 따름일까? 어쨌든 모든 서커스의 성패는 흥행 규모로 판가름 나는 법이다. 아무리 초현실적이고 기괴한 짐승이어도 일단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 수만 있다면, 서커스는 계속된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21세기 한반도 사람들은 요즘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네 번쯤은 듣게 되는 혁명적 유행어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시골살이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귀농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딱 한마디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놀부처럼 어리석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판소리 <흥보가>의 진정한 주역인 놀부가 욕심과 심술의 표상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애호박에 말뚝 박고 불난 집에 부채질...’ 운운 묘사되는 심술의 종류가 150가지가 넘는다지만, 나는 왠지 놀부의 심술이나 욕심보다 어리석음에 신경이 더 쓰인다. 제 손으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걸 다시 치료해주면, 제비가 고마워하며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줄 거라고 생각한 그 어리석음 말이다. 아마도 놀부는 흥부의 대박 사례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사건의 형식적 발생 순서가 결과를 보장한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귀농을 시도하는 수많은 도시민에게 박람회 등의 장소에서 전달되는 이른바 성공사례들은 기본적으로 ‘사건의 형식적 발생 순서나 외피’를 알려주는 데 힘을 쓴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을 심층적인 진실이나 진정한 교훈은 박람회장을 거닐거나 몇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귀농을 꿈꾸고 계신다면 제비 다리 분질러 대박 날 꿈을 꾸는 어리석음일랑 저 멀리 갖다 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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