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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가격 동반하락이 주는 의미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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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19년 9월 9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쌀을 제외한 10대 농축산물은 고추·마늘·양파·무·배추·소·돼지·닭·사과·배를 가리킨다. 이들 농축산물의 올해 가격이 지난해보다 하락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중 몇가지는 양호한 기상여건 때문에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150% 가까이 늘면서 시장공급량이 증가했고, 그에 따라 가격이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10대 농축산물의 가격이 동반하락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품목은 지난해와 생산량이 비슷한데도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를 설명하는 공통적인 요인으로 기상호조 원인을 제외하면 경기침체에 의한 소비위축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상승을 상쇄하기 위한 요식업계의 음식값 인상 ▲‘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외국산 농식품의 국내시장 잠식확대로 인한 국산 소비위축 등도 10대 농축산물의 소비둔화와 함께 가격을 하락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가 심해지면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비용과 외식비 등 당장의 씀씀이를 먼저 줄이는 경향이 있다. 결국 경기침체에 의한 소비둔화는 농축산물 소비위축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요즘 동북아의 정치·경제 상황이 경기침체 국면을 더욱 악화시켜 앞으로도 오랜 기간 소비위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고민하던 중 머릿속을 맴돌던 과거 정책들이 떠올랐다. 바로 1930년대 초반 세계적인 대공황 때 미국에서 특별히 실시한 ‘유통명령제(Marketing Order)’와 ‘자조금제도(Check-off System)’다. 대공황으로 인한 극도의 경기침체기에 미국에서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농업이다. 농산물 소비위축과 공급과잉, 이로 인한 지속적인 가격침체를 겪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농산물 공급을 통제해 시장공급량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유통명령제를 시행했다. 다른 한편으론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는 자조금제도를 운용했다.


유통명령제는 농민들의 동의 아래 재배면적·생산량·시장출하량을 직접 통제하고 품질을 규제하는 한편, 신선시장과 가공시장 분배율을 조정해 시장공급을 근본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농산물가격을 지지하는 효과를 거뒀다. 자조금제도는 농민들의 출하액 중 부담이 적은 최소 금액을 자발적으로 갹출해 해당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한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명령제는 2000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으로 법제화됐다. 2003~2007년 제주 감귤을 대상으로 운용해 상당한 효과를 거뒀지만, 다른 품목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조금제도는 축산부문에서 시작해 축산물 소비촉진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20여개 원예 품목에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조금 거출 길목의 부재와 농가의 자발적인 참여부족으로 조성액이 많지 않고 효과도 미미한 편이다.


최근 농산물가격의 동반하락 등 수급·가격 불안정이 심해지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껏 시행해온 산지폐기, 정부 수매비축, 수출촉진 등의 임시방편적인 정책만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본적으로 체계화된 수급조절과 가격정책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시장공급량에 영향이 적은 영세농을 제외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배농가에 대해 사전적인 재배의향 신고를 받아 시스템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해야 한다. 생산 후에도 신선시장과 가공시장 분배율을 조정해 공급을 조절하는 유통명령제를 상시화하고, 자조금제도를 품목과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하게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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