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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으로서의 정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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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종인

농민신문 기고 | 2020년 6월 26일 
김 종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이미 생산된 쌀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정부가 다 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5년여 전 쌀 수급대책 토론회에서 한 농민이 발언한 내용이다. 당시 쌀 정책을 공부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갓 입사한 새내기로서 적잖이 충격받았던 순간이다.


그렇다고 그 농민의 답답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벼 이외에는 논에서 재배할 수 있는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벼농사를 지었는데, 쌀 가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이 컸을 터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정부에 하소연하는 것만으론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쌀은 우리나라 국민의 주식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관심과 배려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쌀도 농산물의 하나로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현실까지 바꾸진 못한다. 30여년 전 우리 국민이 1년간 먹는 쌀의 양은 밀의 4배였지만 지금은 2배가 채 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쌀 정책을 연구하는 필자 또한 바쁜 아침에는 쌀밥을 챙겨 먹는 날보다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때가 많다.


쌀 소비 감소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식생활이 비슷한 일본과 대만에서도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대만의 1인당 밀 소비량은 쌀 소비량의 83%까지 증가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만의 밀 소비량은 쌀 소비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이제 밀이 쌀 소비량의 턱밑까지 추격해온 셈이다. 1990년대 이후 국가간 연평균 쌀 소비 감소 정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대만보다 정확히 2배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선 감소 속도가 2.4배 빠르다.


우리나라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20㎏ 수준에서 60㎏으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벼 재배면적은 120만㏊에서 73만㏊로 감소했다.


공급과잉으로 쌀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통해 일시적으로 가격 하락을 막을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가 계속되는 한 정부 대책이 그 간격을 계속해서 메워줄 순 없는 노릇이다. 국민의 세금인 정부 재정을 밑 빠진 독에 계속 쏟아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독이 깨졌다면 장독을 수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깨진 독을 전제로 계속해서 정책을 펴나갈 순 없다.


5월말 ‘양곡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올해 공익직불제 도입으로 변동직불제가 없어지고 새로운 양곡관리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큰 틀이 공개된 셈이다. 쌀 가격이 하락할 때 정부가 남는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기준이 제시됐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고시에 담길 예정이라 시행령 개정안만으로는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정부 정책이 만능일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쌀산업을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정부는 심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골을 넣고 득점을 하는 선수가 될 순 없다. 다시 말해 정부가 쌀 소비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과잉공급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급을 줄이거나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정부의 시장격리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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