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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傳家)의 보도(寶刀), 자율과 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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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11월 6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낯선 자리에서 여러 사람을 앞에 두고 농촌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날 무렵, 앞에 앉은 사람 중 한 명이 내게 질문했다. 시골 사정을 잘 모르는 이였다. 농가 소득이 평균 4,000만 원을 조금 넘지만 중간값은 3,0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 즉 한국 농가의 절반쯤은 연 소득 3,000만 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중년 남성이었다. 농사지어 얻는 농업소득은 평균 1,000만 원 내외에 불과하다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사람이었다. 서울시 은평구에 맞먹는 면적을 지닌 평범한 시골 면()에 학교라고는 전교생 40명 남짓한 초등학교 하나뿐이고, 면 전체 인구가 고작 3,000여 명이고, 절반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말에 놀란 이였다. 면사무소 소재지에 가 봐야 음식점이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고, 생필품을 파는 상점이라고는 농협 하나로마트 한 군데밖에 없는 곳이 1,200여 면 지역 중 태반이라는 말에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던 그가 질문했다. “그럼, 농촌에 희망이 없는 건가요?”

  

아아, 그럴 줄 알았다. 툭하면 나오는 물음, ‘희망이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또 만났다. 준비된 답변을 흘렸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그리 말하면서도 내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지, 마음속으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자꾸만 질문이 떠올랐다. “농촌에서 희망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들지?” 답은 모른다. 며칠이 지났어도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희망은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대답은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려는 얄팍한 꼼수였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우울해질 때 꺼내들 수밖에 없는 전가의 보도’, 즉 조상님들로부터 가보로 전해 내려오는 귀한 칼이 있다. ‘자율협동이라는 두 단어다. ‘전가의 보도라는 것은 딱히 답이 없을 때마다 걸핏하면 내세우는 상투적인 말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비유다. 비슷한 속담으로 조자룡이 헌칼 휘두르듯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툭하면 꺼내드는 그것에 상투적일지언정 무시하기 어려운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오십 년째 그 자리에 서 있는 어느 시골 농협의 낡은 쌀 창고 외벽에는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구호가 빛바랜 채 박혀 있다. 백 년 전 일제에 짓밟힌 조선 땅에서 민족운동에 헌신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시골 농민을 붙들고 설파한 정신이 자주, 진리, 협동, 개조였다. 수십 년 남미, 아프리카, 유럽 등 대륙을 넘나들면서 연구했던 네덜란드의 원로 농촌 사회학자 플루흐 교수는, 근년에 쓴 책에서 '스스로 조직하는 지역'이라는 장() 제목을 달아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협동하면서 살림살이와 지역공동체를 지키고 가꾼 여러 나라 사례를 애써 소개했다. 1970년대 경기도 이천의 어떤 농촌 마을에서 있었던 협동 운동 사례를 소재로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다며 찾아와 조언을 구하던 어느 대학원생에게 재촉했다. 촌로(村老)들을 만나 들은 옛 이야기에서 느낀 바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대답은 이랬다. “옛날부터 농민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조(自助, self-help)의 노력을 엄청 많이 하셨던 것 같아서 놀랐어요.”

 

누군가 내게 귀하가 보고 싶은 소수의 사례만 골라서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렇게 항변하고 싶다. 비슷한 음조와 가사의 노래가 반복적으로 유행할 때에는 뭔가 원인이 있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싶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현재 한국 농민이나 농촌 주민 가운데 몇 퍼센트가 협동하는 자율적 행위자인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자율과 협동의 분위기와 실천이 들불처럼 퍼져나갈 수 있는지 그 방도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고 믿는다.


한 달 사이에 머리 숱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감염성 급성 탈모 증후군에 전 국민 절반이 감염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도대체 원인을 짐작할 수가 없는 신종 질병이라고 가정해보자. 예방법이나 치료제를 시급히 개발해야 하는 의학자가 우선 할 일은 감염된 국민 비율이 47.5%인지 51.2%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감염자 수천 명에게 설문지를 뿌려서 평균 연령이 몇 세인지, 거주지가 호남인지 영남인지를 따지는 일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감염되었다가 갑자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 사람들을, 비록 몇 백명에 불과할지라도, 추적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이 황당한 질병에서 탈출한 이들에게 혹시 공통된 식습관이나 생활 스타일이 있는지, 주거환경의 특징이 있는지, 유전학적 공통점이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 치료의 단서를 찾는 게 우선이다. 그런 의학자에게 귀하는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요?’라고 비판한다면, 어리석다.

  

알고 지내는 농촌의 활동가들, 특히 50대 나이의 경륜이 붙은 활동가들이 우울하고 비관적인 심사를 말이나 글로 털어놓는 것을 최근 들어 자주 접한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농민과 농촌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자며, 이십 년 이상을 노력했던 이들이 다들 지쳐가는 느낌이다. ‘희망이 안 보인다는 식으로 말할 때마다 대꾸할 말을 못 찾은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이제 와서 나즈막이 상투적인 대답을 글로 써본다. 걱정근심이 들어도 냉소에 빠지지는 말자고, ‘전가의 보도를 다시 꺼내어 차근차근 살펴보자고. 한편, 여러 종류의 농업농촌 정책 사업을 기획하는 관료나 정책 연구자들 사이에는 자율협동의 힘을 간과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이들에게도 한마디 던져본다. 정부가 개인에게 지원하는 금전은 반쪽에 불과하다고. 농민-주민 스스로 협동 조직을 만들어 내도록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못한다면, 그 정책은 금세 탄력을 잃을 것이라고. ‘전가의 보도가 지닌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자고 제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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