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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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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땅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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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12월 4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미래가 안 보인다는 탄식은 괄호쳐서 미룬 채, 무엇이 문제인지 궁리해본다. 오늘의 농업‧농촌 문제는 대부분 ‘땅’과 ‘사람’의 문제로 소급된다. 이 지면(紙面)에 짧은 생각들을 써 올린 지 몇 해다. 마지막 기고인 만큼 근본 문제를 살펴보자고 생각해, 글감을 요모조모 찾아봐도 결국 ‘기-승-전-땅’ 그리고 ‘기-승-전-사람’이다.


‘땅의 문제’를 두 갈래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농지의 소유 및 이용에 관한 것이다. 농지 제도에 수술칼을 들이대야 할 이유가 여럿 제출되었다. 예를 들면, 농사짓지 않는 지주(地主)의 직불금 부정수급, 농지를 얻지 못하는 청년 농민의 어려움, 낮은 농업 소득률과 농지 가격 상승이라는 두 요인 사이에서 진행되는 농가 사이의 경지 규모 격차 확대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이 얽히고 꼬인 마디들 중에서 핵심은, ‘농지 임대차’의 현실과 농지 제도가 어긋난다는 점이다. 70여 년 전 농지개혁 때 전체 농지의 60퍼센트가 소작지였다. 지금은 약 45퍼센트가 임대차 농지다. 농지개혁으로 해소했던 지주-소작제 문제가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현행 농지 제도를 그냥 두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듯 차근차근 풀든가,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었듯이 ‘한방’에 해결하든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둘째는 사회가 공동으로 이용하고 보전해야 할 자산으로서 농지를 포함한 농촌 환경에 관한 것이다. 논과 밭이 대략 절반씩인 한국의 농지 면적은 약 160만ha다. 논이 점점 더 빠르게 사라진다. 1980년에는 약 130만ha였던 것이 2000년에는 115만ha, 2019년에는 83만ha가 되었다. 40년 사이에 논의 1/3이 없어졌다. 먹거리 보장과 환경보전, 두 측면에서 논은 사회적 공유재(commons)다. 논은 농업인 개인의 생산수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논은 증발-강우라는 물의 순환을 가져오고, 그렇게 주위의 환경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유재이지 사유재산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농촌은 개별 농가들 혹은 농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합친 것 이상의 사회적 공유재로서 있는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유동론》). 물론, 이 문제가 논에만 국한될 리 없다. 논밭을 포함하는 농업-환경, 거기에 곁붙은 마을, 산림과 읍내 중심지 등 ‘농촌이라는 장소’에 관해 사회 전체가 각성해야 한다. 농산물 가격만 오르지 않는다면 농지가 사라지든 말든 문제없다는 생각이, 여차하면 외국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으면 된다는 인식이 상식이 되면 위험하다.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을 설치한다면서 손쉽게 농지에 손대는 관행이 규칙이 되면 곤란하다.


먼저, 농지는 농사에만 쓰자는 ‘농지농용(農地農用)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공간, 생태계, 생활환경을 제각기 알맞게 관리하면서도 전체를 균제(均齊)할 여러 방안을 마련해 부채꼴처럼 펼쳐야 한다. ‘땅’에 관한 광범위한 정책 수단들을 ‘통합적인 계획’ 안에 넣어 추진해야 한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텐데, 공공재정 제도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율과 협동에 바탕을 둔 농촌 주민의 실천에 힘입어 ‘농촌이라는 장소’가 관리되도록 정책 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사람의 문제’도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농촌 인구, 그중에서도 청년층 인구의 총량 문제다. 전국 100만 농가 중 경영주 연령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 수가 1만 가구, 고작 1퍼센트다. 청년 농민뿐만 아니라 청년층 자체가 농촌에 희박하다. 게다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저출생‧고령화’가 사회 전체의 구조 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청년층 인구 확보, 최우선 과제다. 청년이 농사지으며 농촌에서 건실하게 살 수 있게 돕는 여러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한데 묶어 체계화해야 한다. 실전(實戰) 같이 농사를 연습하고 경험할 1년~3년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헛된 거품일랑 말끔히 제거한 실제적인 농사 배우기, 농사 배우는 동안의 생계, 지역사회 관계망에 녹아들기 등을 농촌 현장에서 도와야 한다. 즉, 마을이 농업 학교이자 직장이 되어야 한다. 일정 기간 배우고 나서 자영농의 궤도에 올라설 때에는 농지 등 농업 자원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도로 체계화해야 한다. 농업 말고 다른 일을 하는 청년도 있어야 한다. 공익적인 혹은 사회적인 활동이 농촌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수자원 관리, 환경 및 경관 보전과 관리, 교육‧문화 활동, 고령자‧장애인 등의 돌봄, 마을만들기나 사회적 경제 분야의 조직 활동, 녹색 일자리(green job) 등등. ‘농촌에서 의미 있는 다른 삶’을 꿈꾸는 젊은이를,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젊은이를 얻지 못하면, 아름다운 농촌의 미래 청사진도 공상(空想)일 뿐이다. 지금 당장,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처럼 월급을 뿌려서라도 젊은이를 데려오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말하고 협동하는 주체’의 문제다. “주체는 결여로부터 언어와 더불어 생겨난다(J. 라캉).” 갓난아이가 말을 배울 때처럼, 모자란 것이 있어야 말을 하게 된다. 사람은 말을 하면서부터 주체로 성장한다. 농촌에는 모자란 것이 많은데, 목소리는 미약하다.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다. 목소리들을 집약할 ‘공론장’이 없는 탓이다. 최근 들어 농업회의소, 주민자치회 등 주민이 직접 말하고 논의할 공론장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런 공론장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치(自治)의 조건을 끈질기게 확보해 나가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될 터이다. 한편, 협동하고 연대하지 않고서는, 눈앞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사람이 부족하고 시장(市場)이 실패하는 농촌에서 말이다. 협동하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농촌 문화, 그 안에서 다시 협동의 새로운 주체가 성장하리라. 그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남은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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