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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복(農福) 연계와 치유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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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23년 7월 31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최근 일본 농촌을 방문해 농업과 복지를 연계하는 현장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농촌은 앞으로 농가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고, 농촌의 고령자와 장애인에 대한 복지, 치유농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먼저 살펴본 곳은 25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연간 7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농업법인이었다. 이 법인은 고구마·감자·토란·우엉 등 노지채소를 생산해 1차 가공하고 소포장한 뒤 일본농협과 슈퍼마켓 체인 등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은 간단한 농작물 수확과 소포장 작업을 지역 복지작업소에 맡겨 장애인의 일손을 활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지역 장애인들의 복지시설인 복지작업소였다. 일본의 장애인 복지작업소 유형은 ▲일반기업에 취업해 일할 수 있는 ‘취로이행지원형’ ▲일반기업엔 취업이 곤란하나 고용계약에 기초해 노동이 가능한 ‘취로계속지원A형’ ▲고용계약에 기초한 노동이 곤란한 ‘취로계속지원B형’ 등 3가지가 있다. 이번에 방문한 작업소는 세번째 유형이었다. 작업 자체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은 아니지만 취업이나 고용노동은 어려운 장애인으로, 단순 작업만 가능한 장애인의 복지작업소였다.


이 작업소에서는 20명의 장애인이 근무했다. 근로자들은 작업소 차량 등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노인시설을 방문해 청소하거나 농산물 포장작업 등 위탁작업을 했다. 시설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군고구마로 만들어 지역농산물 직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근로한 장애인들에게 보수로 지급했다.


이밖에 마을 단위로 영농 활동을 하는 집락영농(集落營農) 지역도 방문했다. 마을에 있는 농가 394가구 중 343가구가 참여해 법인을 설립했고, 고령화한 개별 농가는 농지 이용권을 법인에 장기 위탁했다. 농기계를 이용한 농작업은 법인의 젊은 직원들이 수행했다. 농작업이 가능한 농민은 노동력을 제공해 노임을 받았다. 마을 농경지 240㏊ 중 220㏊가 이런 집락영농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마을은 농협과 계약재배를 통해 쌀·콩·옥수수·감자·토란 등 수확한 농작물을 전량 판매했다. 집락영농은 일본에서 농촌 고령화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여러 농촌 현장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치유농업을 생각해봤다. 오래전에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가 대두된 적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동 착취라든가 비판적 목소리가 커 논의는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복지는 복지일 뿐’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제 복지와 농업의 연계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고민하는 노력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2년 전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이 시행됐고 농촌진흥청에서 치유농업에 대한 연구지도가 시작됐다. 최근 학계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치유산업포럼’도 출범했다.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한 지금이 농업과 복지의 연계를 고민할 때다.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농업은 치유의 기능을 제공할 수 있고, 복지와 연계된 농업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일에 대한 보수를 떳떳하게 받을 수 있다’는 자긍심을 고령자·장애인 등에게 심어줄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농협·농업법인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이런 모델을 고민하고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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