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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들어가며: 왜 지금 민간기업 참여인가


최근 국제개발협력에서 주된 화두는 민간재원 동원이다. 주요 공여국들의 ODA 지원 규모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고, 정책 방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국제개발금융공사(USDFC)를 2021년 발족하며 무상원조에서 민간투자 중심으로 전환 중이고, 오랜 기간 인도적지원과 공적개발원조의 중심에 있던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2025년 2월 폐쇄하였다. 영국 역시 2020년에 국제개발부(DFID)를 외교개발부(FCDO)로 통합하고 2022년 영국국제투자공사(BII)를 발족하며 전통적인 공여국(Donor)에서 임팩트 투자자(Investor)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독일(DEG), 프랑스(Proparco), 캐나다(FinDev) 등도 개발금융기관(DFI)을 통한 민간자본 동원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은 농업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농업은 기후변화, 자연재해, 가격변동성 등으로 인해 민간투자가 기피되는 대표적 분야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길고, 소농 중심의 생산구조가 일반적이라는 특성도 투자 리스크를 높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공공재원과 민간자본을 결합하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혼합금융은 공공재원을 촉매제로 활용하여 민간재원을 동원하는 개발금융 매커니즘 중 하나로, 2025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개최된 제4차 UN개발재원총회에서도 핵심의제로 다뤄졌다. ODA가 인내 자본 또는 촉매 자본으로서 최초 손실 충당 자본(First-loss capital/후순위 자본)이나 보증을 제공함으로써 민간 자본의 진입 위험을 낮추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농산물 가공·유통시설 구축, 콜드체인(냉장·저장 시설) 확충, ESG 펀드 연계 등에서 이 방식이 최근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민간기업 참여가 효과적인 분야와 방식


농업 ODA에서 민간기업의 참여는 공공부문이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공급망 혁신, 국제 품질기준에 맞는 수출 인프라 구축, 현지 시장 연계 등이 대표적이다.

  KOICA가 노르웨이(Norad), 미국(USAID), 영국(FCDO) 등 공여기관과 함께 2024년 런칭한 FASA(Financing for Agri-SMEs in Africa) 펀드는 이 접근의 좋은 사례다. FASA는 약 9천만 달러 규모의 모태펀드(Fund of Funds)로, 아프리카 농업 분야 중소기업에 전문성을 보유한 소규모 임팩트 펀드를 선정해 출자하고, 이를 매개로 민간재원을 추가로 동원하는 구조다. 공공재원이 최초 손실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여 민간 투자자의 리스크를 낮추고, 현지 임팩트 펀드 운용사와 피투자 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을 병행함으로써 단순 자금 공급을 넘어 생태계 전반의 역량을 키운다.

  FASA의 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시장에는 현재 약 175개의 농업중소기업(Agri-SME) 펀드가 운용 중이나, 상위 16개 대형 펀드에 전체 자본의 43%가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60억 달러의 자금 수요 대비 실제 조달은 47억 달러 수준으로 공급 격차도 존재한다. FASA는 이러한 시장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 소외 지대의 신규 소규모 임팩트 펀드 운용사를 우선 지원하며, '투자-엑셀러레이팅-기술지원'이 결합된 통합적 접근을 지향한다.

 



공공·민간·현지 파트너 간 역할분담


혼합금융이 실제 개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민간기업, 현지 파트너 간의 역할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공공부문(ODA)의 역할은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데 있다. 민간이 진입하기 어려운 초기 리스크를 흡수하고, 사회·환경적 가치를 사업 설계에 내재화하며, 소외 계층이 지원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FASA에서 KOICA의 무상재원(grant)이 후순위 자본(First-loss capital)과 기술지원기금(Technical Assistance Facility)에 활용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민간기업의 역할은 기술과 시장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것이다. FASA에서 출자한 현지 임팩트 투자사인 Catalyst Fund가 투자 검토 중인 'Jamboo Fresh Packhouse'는 이를 잘 보여준다. 케냐 나이로비에 소재한 이 기업은 국제 품질기준에 따른 세척·선별·냉장·포장 일괄 공정을 수행하고, 현지 소농 및 생산자 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고품질 신선식품을 수급하여 유럽·중동 프리미엄 시장으로 수출한다. 규격화된 상품화를 통해 산지 폐기율을 줄이고, 농가 수익 상승과 지역 고용 창출에 기여한다.

  현지 파트너(농민조직, 로컬 기업, 정부기관)의 역할은 사업의 현지화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FASA의 또 다른 파트너인 ARAFII(Acumen Resilient Agriculture Fund II)가 투자한 케냐의 'Farm to Feed'는 현지 테크 기업이 디지털 기반의 B2B 농산물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며 약 200여 개 품목의 농산물을 전량 수매하는 모델이다. 지역사회 소농, 현지 농업 테크 기업, 투자자, 국내외 시장을 포함하는 가치사슬을 형성하여 소농의 소득 약 250% 증대, 160개 고정 고객사 확보, 연간 약 15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협력국의 주인의식과 현지 역량 강화


민간기업 참여가 단순한 외부 자본 유입에 그치지 않으려면, 협력국 주도성(Ownership)과 현지 역량 강화가 사업 설계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민간기업의 기술과 자본이 현지 농가 및 관련 기관의 역량 강화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업성과는 외부 행위자에 의존적인 상태로 남게 된다.

  FASA의 접근은 이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단순히 자금을 투자하는 데서 나아가, 소규모 펀드 운용사에 대한 기술지원(TA)을 병행하여 현지 임팩트 투자 생태계 자체를 육성한다. 이는 외부 자본이 빠진 뒤에도 현지 시장이 자생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다.

  아울러 현장 수요와 시장 메커니즘을 중심에 둔 사업 설계가 필수적이다. 농가의 유통시장 진입 경로를 다각화하고, 민간 자본과 기술이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협력국 정부와 농민조직이 실질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사업 종료 후 지속가능성과 확산 가능성


농업 분야 혼합금융의 궁극적 목표는 공여국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성과가 유지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비즈니스 모델의 자생력이다. 'Farm to Feed'나 'Jamboo Fresh Packhouse'처럼 시장 기반의 수익 구조를 갖춘 기업에 투자할 때, 보조금 의존 없이도 운영이 지속될 수 있다. 사업 초기부터 수익성과 개발효과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 현지 통화 기반의 투자 구조다. KOICA는 FASA 펀드 내에서 개도국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환차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 통화 기반 투자 수단 및 자체 통화 위험 경감 메커니즘 도입을 고민 중이다. 이는 현지 금융 시스템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사업의 현지 뿌리내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디지털 전환과의 연계다. KOICA는 FASA를 통해 전통적 가치사슬을 넘어 현지 테크 기반 민간 파트너(Agri-tech 스타트업 등)와의 협업 필요성을 확인하고 있다. 디지털 공급망 혁신 모델은 확장성(Scalability)이 높아 다른 지역·품목으로의 확산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맺음말: 상호 호혜적 협력을 위한 원칙


민간기업의 농업 ODA 참여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공공성과 개발효과성을 유지하면서 민간의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공여국 민간기업과 협력국 정부, 농민조직, 현지 기업이 상호 호혜적 협력관계를 형성하려면, 이익 배분 구조가 현지 행위자에게도 공정해야 하고, 기술 이전과 역량 강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협력국의 개발 수요와 우선순위가 사업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FASA와 같은 혼합금융 사례는 이러한 원칙이 실현 가능함을 보여준다. 공공재원이 리스크를 흡수하고, 민간이 기술과 시장을 동원하며, 현지 파트너가 주체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이것이 지속가능한 농업 개발협력의 대안적 방향일 수 있다.






기고/ 한국국제협력단, 서동성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