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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9월호-농촌에서 온 편지] 다시 쓰는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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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귀거래사

글.홍상희 풍산농원 대표

 지난 2011년 가을, 그러니까 잡지 기자 생활 후 10년이 넘게 가난한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등산, 책읽기 등으로 ‘유유자적’ 하던 나는 불현 듯 고향인 나주로 귀농을 결심했다. 큰 고민 없이 ‘그래, 한번 훌훌 털고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 보자. 무릉도원이 어디 따로 있더냐?’ 하는 배짱이었다고 할까. 마침 아버지가 시골마을의 뒤편 구릉에 일궈 놓은 6천 평가량의 과수원이 새 임자를 찾고 있었고 아내가 선선히 내 의견을 따라주어 낙향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학업을 위해 상경했던 때가 1979년이니 33년 만의 귀환이었다.
 단감, 떫은감, 배의 과수원에 밭이 천 평가량 딸려 있어 초보농사꾼에게 버거운 규모였으나 내친걸음으로 한번 부딪쳐 볼 밖에. 그해 겨울부터 농업기술센터를 비롯해 도농업기술원, 배시험장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배연구회, 감연구회에도 들어가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농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수지가 전혀 맞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사전에 연구나 경험 없이 뛰어든 탓으로, 병충해 방제가 철저하지 못했던 데다 선별 포장하는 기술이 엉성하고 작업환경도 나빴으니 도매시장에서 등급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더구나 일등급 위주로 가격을 좀 쳐주고 그 아래로는 ‘칼질’을 해대기 일쑤여서 좀처럼 제값을 받기 어려운 ‘공판장시스템’에 대한 몰이해도 만성 적자에 한 몫 했으니…. 인력은 최소로 쓰며 거의 부부 노동력으로 버티었지만 결과는‘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은
없고’ 였다.
 그래서 4년째부터는 농사 규모를 확 줄여서 자경지 3천 평으로 근근이 버티는 형국. 주위에서는 시설하우스를 짓든가 해서 돈 되는 특용작물을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자금이 바닥난 상태여서 새로운 투자는 언감생심이었다. 농촌 현실의 쓰라림을 한번 맛보고 나자 기운도 떨어져 이것저것 딴 궁리만 하고 있으니 초반 의욕적인 ‘전투모드’에서 ‘관망모드’로 변했다고 할지. 차제에 농업을 대하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배, 감 같은 전통 과일의 가격이 20년째 하락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나름 아닐까. 평소 한가할 때 도서관을 찾는 나는 지난 겨울 <시골의 발견>(오경아 지음)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유럽 농촌의 여러 모델을 소개한 글 가운데 ‘농장가게’ ‘키친 가든’ 따위의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 현 유통구조의 난맥상으로 보면 이게 어쩌면 대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농산품을 시장에 내다파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찾아오는 지인, 고객에게 직접 어린 시절의 추억과 시골스러움을 선사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올해 추수가 끝나면 묵힌 밭에 뽕나무, 산자나무, 보리수, 무화과, 석류, 오갈피나무, 두릅, 개두릅, 구기자, 나무딸기 등을 조금씩 나눠 심고 경사지에는 취나물 머위 고사리와 덩굴식물 재배를 계획하고 있다. 이른바 ‘다품목소량생산’의 가벼운 작전이랄까.
 줄곧 제초제, 성장촉진제 따위는 금해 왔지만 생산 방식에서도 화학농약과 비료는 피하고 미생물을 위주로 과 목초액을 활용할 생각이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천혜녹즙, 한방영양제 등을 만들어 볼까 한다.
 6년 동안 과수농사를 지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바가 있는데, 농업은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자연에 맡기는 여유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잡초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초생재배의 훌륭한 재료이며 낙엽 부산물이야말로 최고의 천연 거름이라는 것, 따라서 가축분 퇴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유기농 하면 먼저 ‘고생스러움’을 떠올리는 게 현실이지만 나만의 자연농업, 태평농업으로 ‘즐기는 농사’ 의 한 모델을 만들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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