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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농촌 지역사회, 청년 일자리 정책의 출발점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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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5월 9일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촌에서 청년 일자리 정책을 펼쳐야 할 이유를 평이하게 구성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청년이 몰리는 대도시의 출산율은 낮고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에서는 외려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므로 청년이 지금보다 더 많이 농촌에서 거주한다면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심각하게 고령화되고 인구가 감소한 농촌 지역사회가 유지되려면 청년 인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청년이 농촌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책으로 농촌에서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는 어긋나기 십상이다. “엉뚱한 선물이 배송되거나 소중한 선물이 반송되는 게 세속이듯이, 혹은 그 모든 선물은 결코 수신자를 찾지 못하거나 아무나 그 선물의 수신자를 자처하는 구조가 세속이듯이”(《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 김영민, 2011, 21쪽), 엉뚱한 정책이 실행되거나, 전달되지 않거나, 올바른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아무나 지원정책의 대상이라고 자처하는 것이 정책이 집행되는 현장이다.


작년 봄, 전화가 왔다. 윗분의 지시를 받아 ‘농촌 청년 일자리 지원정책’을 기획하고 있는 사무관이라고 했다. 농촌 청년 정책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다짜고짜 들어오는 요청에 조금 황당했지만,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되물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라도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비농업 부문 창업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30분 정도 대화한 듯하다.


내가 말한 요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청년이 농지를 구하기가 워낙 어렵고 긴 시간 경험을 쌓아야 하기에 농업 부문 창업을 돕는 정책은 이미 시행 중인 정책에 덧붙여서 개선ㆍ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둘째, 비농업 부문 창업 지원은 여러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오래전부터 추진했지만, 농촌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농촌에서 창업이란 십중팔구 상업 및 서비스업 부문 자영업이기 쉬운데,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구매력이 떨어지는 농촌에서 그런 분야의 창업에 뒤따를 실패의 위험이 크다. 셋째, 그동안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은 것은 농촌에서 공익적인 혹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에 청년이 복무하게 하고, 그 대가(인건비)를 정부가 지급하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이다.


짧은 전화 통화로 전달한 내 의견이 반영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 ‘정책 기획’이 진지하고 치열한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내 의견은 그럴싸한 대안으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었다. 몇 달 지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농업ㆍ농촌 청년정책 추진 방향’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챙겨 보았다. 앞의 내용 중 세 번째에 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세 번째의 방안, ‘농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이 왜 긴요한지를 이 지면(紙面)에서 짧게나마 펼쳐본다.


창농이나 비농업 부문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청년에게 소득을 얻을 기회만을 제공하려 하지만, 사회적 일자리 정책은 소득뿐만이 아니라 청년의 성장과 지역사회로의 진입 및 통합까지 도모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낯설고 기회가 별로 없을 듯한 농촌을 찾아오는 청년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소득원’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소득은 중요하지만, 소득에 덧붙여 ‘의미 있는 일 경험’을 원하는 청년의 욕구를 무시할 수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벌이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시골에서도 살려고 할 것이다’라는 순진하다 못해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발상에서 출발하는 정책은 어긋난다.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창업 후 경영상의 리스크를 청년 본인이 감당할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농촌에서의 창업에 뒤따르는 위험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자본이 없는 청년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건비를 공공 부문이 직접 지급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주장하면, 재정 당국은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기본소득 논의처럼 ‘물고기를 직접 주는 것’이 왜 나쁘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논외로 친다.)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에게 급여를 지불하는 것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를 잡은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대가를 받고 잡아야 할 물고기란 무엇인가? 돈벌이가 되지 않아 나서는 사람이 없고, 과거에는 농촌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해결했으나 지금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어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일거리’를 말한다. 농촌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익적 가치가 있는 활동을 뜻한다.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농촌에 살아보지 않았거나 농촌에 살아도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농촌에는 대가가 없는 ‘일거리’를 공공적ㆍ사회적 ‘일자리’로 전환해야 할 게 켜켜이 쌓여 있다. 정주 여건 개선, 농업환경 및 경관 관리, 아동 및 청소년의 돌봄과 교육, 평생교육, 노인 및 장애인 돌봄, 문화 여가 활동, 마을만들기 또는 사회적 경제 부문의 조직 활동 등 젊은이가 필요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농촌 지역사회에서 청년의 역할을 고려한 일자리 정책 구상》, 강마야 외, 2024, 114~115쪽 참고). 그런 활동은 필경 청년들이 농촌 지역사회의 주민과 함께 어울려 의논하고 일하는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청년의 성장과 농촌 지역사회로의 진입 및 통합이라는 명분을 덧붙인 이유다.


‘농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 구상’에는 그 세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테다. 여기에서 그것을 상설(詳說)하기는 어렵다. 몇 가지만 첨언한다. 첫째, 취업 지원 정책사업이 흔히 그렇듯 이른바 ‘9 to 6’라고 하는 주 40시간 전일제 근무가 아닌 시간제 근무 형식을 도입하는 게 좋다. 청년이 주업을 유지하거나 모색할 시간을 확보하면서 보완적으로 사회적 일자리에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청년이 개인적으로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는(할) 농촌 지역사회 주민조직이 청년을 고용하고 그 조직을 공공 부문이 지원하는 형식을 갖는 게 좋다. 그 밖에도 섬세하게 따져야 할 부분이 많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끝으로, 이런 구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정책 당국은 흔히 선례를 찾는다. 선례가 없는 일은 리스크가 크다는 식으로 회피한다. 그러나 이런 구상과 관련해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사업’, 한국에서도 시행한 적이 있는 전라북도의 ‘인구 과소화 대응 지원사업’ 등 여러 선례가 있으며 앞에 인용한 보고서 등 여러 자료에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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