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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햇빛소득마을의 대차대조표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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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 기고 | 2025년 10월 13일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에 ‘햇빛소득마을 500개소 조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를 찾아보았다. 여주시 구양리를 모델로 삼아 “농지ㆍ저수지 등 활용 가능한 부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발전 수익을 마을 공동기금으로 활용”(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2025년 8월 24일)하겠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안 나왔지만, 언급된 모델을 보고 장점과 단점을 헤아릴 수 있겠다.


‘우수사례를 따라 하면 되는데, 왜 따지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심은 연구자의 고질병이고, 관료제의 병리는 성과주의다. 주목받기 시작한 정책 기획이 충분한 근거 없이 추진되는 것, 졸속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도 정책 연구자의 할 일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자는 절박한 주장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구양리의 사례를 흉내 내어 정책을 설계하는 그것이 타당하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먹은 게 별로 없어 배고프다고, 이웃집 젊은이가 그저께 먹은 것과 같은 생크림 케이크를 허겁지겁 집어먹으면 될까? 젊은이와 다르게 늙은 내 몸엔 당뇨가 있을 수도, 유당불내증이 있을 수도 있다. 요점은 의심하고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


전력망 수용의 한계, 농지 및 경관 훼손, 농업 생산성 저하 등을 이유로, ‘햇빛소득마을 조성사업’에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사람이 여럿이다. 그것들에 관해서 좁은 지면에 상설하기는 어렵다. 뜻밖에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돈 문제에 관해서 살펴보겠다. 구양리 햇빛소득의 대차대조표, 무슨 명목으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얻은 것은 얼마인지 소상히 알려진 바 없기 때문이다. ‘월 1,0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있다. 그래서 수익금으로 마을 주민 복지에 사용한다.’라는 식의 신문기사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버스도, 밥도 공짜 … 월 천만 원 수익 내는 마을의 비결”이라는 기사 제목도 보았다. 그런 정도가 전부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후에 대략 정리한 ‘장부’는 다음과 같다. (엄밀한 수치는 아니지만, 실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구양리처럼 1메가와트의 전력을 태양광으로 생산하려면 약 2,000평의 면적이 필요하다. 농촌 마을에서는 농지를 활용할 개연성이 높다. 토지 가격은 셈하지 않고, 그 정도 면적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는 데 드는 돈, 즉 토지를 제외한 투자 비용은 약 15억 원이다. 그렇게 해서 생산한 전력을 판매해 얻을 수 있는 수입(매출)은 연간 1억 8,000만 원쯤 된다. 설비의 주요 부품인 모듈의 수명은 20~25년, 인버터의 수명은 10~15년 정도라고 한다. 설비의 사용 연한을 20년으로 잡고, 토지 가격을 평당 1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데 약 10년이 걸릴 듯하다.


구양리의 경우 투자 비용 15억 원을 대출받아 조달했다고 보도되었는데, ‘월 1,000만 원의 순수익’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출액에서 관리 비용 등을 제외한 금액인 듯하다. 마을에 노는 땅이 2,000평 있고 여유 자금이 15억 원 있는 게 아니라면, 빚 내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원금에 이자를 덧붙여 상환해야 한다. 연간 이자율을 5퍼센트라고 가정하면 20년 분할 상환한다고 해도 매년 625만 원이다. 이 경우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까지의 기간이 11~12년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요약하자면, 구양리처럼 2,000평 정도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는 것을 전제로, 빚을 얻으면 20년 동안 잘해야 월 500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또는 10년 동안 월 1,000만 원 정도를 얻고 나머지 10년 동안 발생하는 수입은 전부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감가상각비나 본디 농사를 지었으면 얻을 수 있었을 농업소득을 포기한 부분은 아예 생략한 계산이다. 그리고 복잡한 행정 및 시공 절차 등의 업무를 대행해 줄 사업체에 돈 주고 용역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한 계산이다. 시도해 보라고 누구에게나 권유할 만한 일은 못 될 것이다.


무엇보다 토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데, 구양리의 경우 마을의 공유지가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같은 곳을 제외하면, 요즘 한국 농촌 마을에는 공유지가 별로 없다. 구양리는 예외적인 곳이다. 마을 공유지가 아니라면, 주민들이 각자 조금씩 땅을 내어야 하는데, 앞으로 20년을 내다보고 땅을 빌려주거나 기부하게 하려면 그 설득 작업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햇빛소득마을 조성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정부가 지원한다는 그 내용에 따라서 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 달라질 것이다. 가령, 15억 원을 보조금으로 그냥 준다고 하면 나서는 마을이 많을 것이고, 정부가 융자를 알선하고 이차를 보전하는 정도로 지원한다고 하면 나서는 마을이 아주 적을 것이다. 정책 당국의 선택은 그 중간 어디쯤이 되기 쉬울 테다.


여기까지가 농촌 마을 하나를 상정하고 돈 계산만 해본 ‘대차대조표’다.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단순히 ‘돈 계산’만 가지고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책 대상자에게 금전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해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편익과 비용을 따져보아야 한다. 사회적 편익과 재무적 이익보다 사회적 비용을 포함한 전체 비용이 많다면 쉽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 ‘국가재정법’에서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인 대규모 사업에 관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의무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촌 마을의 농지 등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도록 촉진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때, 따져보아야 할 편익은 크게 두 종류다. 태양광 발전을 확대함으로써 화석연료를 태우는 화력발전 등을 줄이는 그만큼 감축하게 될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마을 주민이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이다. 비용에는 여러 항목이 있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쓰는 화석연료 기반 공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발생량, 농지에서 농사짓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손해, 농지규제 완화와 더불어 발생할 사회적 효과, 경관 훼손 등이다. 사회적 비용이나 편익은 눈에 잘 안 보여서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시간 여유가 있고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정책 대상 당사자의 ‘대차대조표’와 사회 전체의 ‘대차대조표’, 두 개를 모두 계산해 정책 추진 여부를 결정하거나 기획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차근차근 따져서 정책사업을 기획할 만한 상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규모로 ‘시범사업’ 같은 실험을 하면서 판단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다. 시범사업도 없이 당장 내년에 ‘100개의 햇빛소득마을 조성’이라는 목표는 아무리 보아도 신중하지 못하다.


윗사람이 말한다. “좋아, 빠르게 가!” 속도를 주문하면 따라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라는 속담은 효용을 잃었다. 조금 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면 게으른 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그래서 ‘예스맨’으로 황급히 변신한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급자의 ‘속도 강박증’이고, 둘째는 아래로 흐르기만 할 뿐 위로는 오르지 못하는 ‘소통 단절증’이다. 의심병 환자인 나는, ‘햇빛소득마을 100개 조성’이라는 말은 그 같은 ‘속도 강박증’과 ‘소통 단절증’이 결합한 조직의 문화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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