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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농촌정책의 해법은 마을에 있다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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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성주인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11월 4일
성 주 인(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가적인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토 구석구석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농산어촌 마을은 소멸 위협의 최일선에 서게 되었다. 언론 보도 등으로 일부 마을들이 처한 위기 상황이 종종 국민들에게 환기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농산어촌 마을은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곳으로 여겨지면서 우리의 관심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버린 상황이다.


가장 일선에서 마을을 돌봐야 할 위치에 있는 게 기초 지자체이지만, 대체로 단체장들은 유권자들이 몰려 있는 도시지역에 더욱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2020년부터 중앙정부가 지원하던 마을사업이 시·군에 이양되면서 생긴 예산은 면보다는 읍에, 배후마을보다는 시가지 지역에 우선 투자되고 있다. 사업 이양과 함께 농산어촌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 정책 개발도 제약을 받는 실정이다.


농산어촌 마을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 집단도 소수에 머문다. 농촌을 도시개발 유보지역 정도로 바라보는 도시 분야 일부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일선 마을들이 처한 위기 상황이 ‘무거주공간’ 확산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한편 농촌정책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래 마을 소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농촌공간을 재편하자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언젠가는 소멸할 마을이라면 인위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하기보다 인프라가 구비된 거점 마을에 합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농산어촌 마을 소멸을 대세로 보는 입장을 취한다.


필자는 2020년부터 농산어촌 마을의 변화를 추적 조사하는 연구에 참여해왔다. 전국 100여 개 표본 마을들을 대상으로 5년 넘게 관찰한 결과 단순하게 요약하기 힘든 복합적인 변화상을 확인하게 된다. 첫째, 정주공간으로서 마을 기능은 소멸하지 않고 유지되는 모습이다. 인구 감소 마을이라도 인구 유입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먼 장래까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는 마을이 소멸하리라 예단할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둘째, 전통적인 주민 공동체로서 농산어촌 마을이 지녔던 속성이 약화된 건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소멸되었다 볼 수는 없다. 노인층이 다수를 이루는 농산어촌에서 마을은 주민들의 주된 교류 장소이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주민들의 가장 주요한 소비처도 마을인 것으로 나타난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취약층 대상 돌봄활동도 주로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셋째, 일부 마을에 한정된 얘기이기는 해도, 마을은 경제활동 공간의 역할도 갖는다. 영농활동에 기반한 공동체로서의 기능은 약화되었지만, 농촌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한 융복합산업 관련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성격의 조직들이 농산어촌 마을을 무대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행정리 단위 공동체 기능에 초점을 두어 진행된 조사 결과를 두고서는 다른 입장도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다수의 농산어촌 마을들이 공동화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마을보다 확대된 지역 단위 공동체를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대표적으로 읍·면 단위 주민자치회 같은 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두 방향은 상호 배타적이기보다는 보완적이라고 생각한다. 읍·면 단위 지역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된 사례들을 보면, 마을 이장단을 중심으로 한 일들과 대의기구로서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주민 의견을 모으는 활동이 적절히 역할 분담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농촌정책의 많은 해법들은 마을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 지역사회 돌봄 같은 활동들이나 최근 시행된 농촌공간재구조화법에 기반한 농촌특화지구 같은 제도는 마을을 무대로 이루어진다. 현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떠오른 햇빛소득마을 조성, 공동영농 육성 같은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내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될 농어촌 기본소득도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지금 살아가는 마을에 계속 자리잡고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농산어촌 마을은 여전히 사람들이 거주하고 활동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을 소멸의 경고에 사로잡혀 우리는 이를 종종 잊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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