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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농촌 노인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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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 기고 | 2025년 11월 11일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촌에는 약 250만 명의 노인이 산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해 보니 이동, 식사, 빨래 같은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약 46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가족이든 이웃이든 요양보호사든 남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노인이 그 절반쯤인 21만 명이나 된다. 혼자 힘으로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워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결식 노인이 거의 1만9000명에 달한다. 경제적 문제로 필요한 음식을 구매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노인이 8만4000명쯤 된다. 누군가 도와줘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노인은 거의 15만 명인데, 아예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노인이 4만7000여 명이다. 통계자료를 자세히 살펴볼수록 암울해진다. 


농촌에서 노인돌봄과 관련하여 지역사회 주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비록 제한된 수준이지만, 일상생활 돌봄과 관련된 부분이다. 보건의료는 전문성 있는 의료인이 수행할 수밖에 없고, 빈번한 가사노동은 요양보호사들이 최소한의 수준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노인돌봄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돌봄이 필요하다. 이것은 농촌에서는 예전부터 가까운 이웃들이 챙겨왔던 일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농촌 노인의 일상생활 돌봄과 관련된 정책은 최근에 시작되었다. 그 규모는 아주 작은 초기 단계의 정책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 주민 생활돌봄공동체 지원사업’을 2022년에 시작했다. 전국 40여 개소의 읍면 지역에서 시행된다. 보건복지부 정책 중에 노인 대상 일상생활 돌봄 관련 정책사업을 찾자면 ‘맞춤형 노인돌봄사업’ 정도가 있는데, 이것은 생활지원사를 운용해 안부를 확인하고 긴급상황에 관계 기관에 연계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리고 근래에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어 ‘농촌 지역사회 주도 노인돌봄’을 활성화할 정책을 펼칠 최소한의 법적 기반이 갖추어졌다. ‘농촌 지역공동체 기반 경제ㆍ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다. ‘의료ㆍ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2026년 3월 시행 예정)은 지역사회의 주도성을 인정하는 법률이 아니며, 법률명에서 ‘통합’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갈래로 전달되는 공적 돌봄 서비스들을 연계ㆍ통합하자는 것이어서 한계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운영하는 통합지원협의체를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통합해 운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즉,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부응하듯, 경남 거창군, 경남 고성군, 충남 홍성군, 충남 아산시 등 몇몇 농촌 지역에서는 노인돌봄 문제에 지역사회 주민이 직접 관여하도록 길을 열어 귀감이 된다.

그 사례들의 공통점이 있다. 지역사회 주민 조직이 가장 큰 주도성을 가지고 노인돌봄에 나설 경우에, 1) 노인돌봄의 구체적 필요를 효과적으로 식별하고, 2) 돌봄 활동의 효율을 기하며, 3) 지역의 사회자본 증진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계획과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민들만의 힘으로 자원 동원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주도성은 행정-보건복지기관 전달체계와 잘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성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결합이 이루어질 구체적인 하나의 경로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중앙정부의 법률이나 정책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세세한 규정을 담고 있지 않다. 농촌 지방자치단체 및 그 지역의 주민들이 시도할 만한 새로운 구상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다음과 같은 과제가 남아 있다. 노인돌봄이 단지 공적 체계만의 책무가 아니라 농촌 지역사회가 관여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주민들이 알게 하고, 주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학습과 실험적 시도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노인돌봄 실천에 나서는 지역사회 조직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기성의 보건복지 체계는 농촌 현장에서 지역사회의 관여가 있을 때 그 성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행정 부문이 인식하고, ‘민관이 협력하는 노인돌봄 체계’를 지방자치단체 현장 수준에서 구축해야 한다.


이 경우에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것은 불필요한 오해에 기인하는 ‘칸막이’ 행정의 문화다. 노인돌봄을 왜 농촌정책에서 다루느냐, 돌봄은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몫이니 지역사회 주민은 참견하지 말라 등등의 말이 조금씩 나오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노인돌봄이 공적 체계만으로 충분히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농촌 지역사회 주민들이 알고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게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정부나 농촌 지방자치단체에 제안한다. 


첫째, 농촌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노인돌봄 실천을 지원할 수 있는 국고보조사업으로는 ‘농촌 주민 생활돌봄 공동체 지원사업’이나 ‘돌봄농장(사회적 농업) 지원사업’ 정도가 있을 뿐이다. 대체로 하나의 읍이나 면 범위 안에서 설립된 주민 조직이나 가까운 곳의 농민이, 이웃의 돌봄 필요를 직접 파악하고 실천계획을 수립해 활동하는 것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이 사업은 그 수요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그다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재정 당국이 관심을 갖고 재정 투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국고보조사업이 아니더라도 주민 조직이 노인돌봄에 나서도록 지원하는 시책을 펼치는 곳들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사업을 시군 수준에서 한데 묶어 계획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역공동체 기반 경제ㆍ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그런 계획을 수립하도록 시군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지역사회가 관여하는 노인돌봄이 안정적으로 정책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게 법률에서 마련한 계획 제도를 활발하게 활용해야 한다. 


셋째, 주민들이 직접 노인돌봄의 필요를 확인하고 돌봄 실천을 기획할 만한 역량 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다양한 수준의 학습 기회를 농촌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노인돌봄 활동에 참여하는 소수의 농촌 주민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것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학습 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노인돌봄과 관련된 기초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정책 거버넌스는 지금까지 보건복지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행정-보건복지기관’의 두 층위에 형성된 구조였다. 이 같은 ‘일원적ㆍ이층위 거버넌스’는 지역사회 주민들이 깊게 관여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비록 ‘사회보장급여의 이용ㆍ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41조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시군과 읍면 수준에 각각 설치하게 함으로써, 주민 참여의 통로는 갖추어졌지만,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 특히 읍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사회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노인돌봄 문제에 관여하려면 기성의 거버넌스를 대폭 재편해야 한다. 지역사회 주민을 돌봄 등 복지 서비스의 수혜자로만 머물게 하거나, 기껏해야 읍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자를 발굴해 행정이나 보건복지기관에 보고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앞으로는 그런 정도의 소극적인 역할 범위를 넘어서, 적어도 사회보장수급권 제도 밖에서 제공되는 노인돌봄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 필요를 식별하고 서비스 제공 대상자를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 상당한 주도권을 지역사회에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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