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푸터바로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로고

  1. ENG
  2. 사이트맵 열기
  3. 메뉴열기

KREI논단

농촌 읍면 주민자치를 위한 당면 과제

2025.12.09
50
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12월 9일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방자치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심의에 들어갔다.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법률적 근거를 확고히 하려는 입법 청원의 결과물이다. ‘지방자치법’에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읍ㆍ면ㆍ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라는 조문과 관련 조문들을 신설한 것이 개정안의 내용이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주민자치회 관련 근거 조항을 ‘지방자치법’으로 이관하는 모양새다. 주민자치 운동을 오래전부터 실천해온 이들은 이번 법률 개정을 두고 일단 환영하는 듯하다.


그런데 개정 법률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자치의 제도화’라고 말하기에는 미비한 곳이 많다. 성에 차지 않는다. 이번 법률 개정안의 미비점에 관해서는 상설하지 않겠다. 입법을 통해 만족스러운 제도를 단번에 얻는 일은 원래 드문 사건이어서,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고 싶다. 제도가 실천을 보장하기보다는 실천이 제도를 견인하는 게 상례(常例) 아니던가.


주민자치를 이루려면 당연히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을 확보하려면 오랜 기간 자치 실천이 선행되어야 할 터이다. 그리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로 그 실천을 지원해야 할 터이다. 어떤 실천과 지원이 단단하게 쌓여야 할까?


첫째, ‘읍면 계획’을 주민들이 스스로 수립해야 한다. 자치는 지역사회의 공적(公的)인 과제를 주민들이 스스로 달성하는 것이다. ‘공적 과제’란,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사안을 말한다. 작은 읍면 지역사회라 하더라도 사안마다 주민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찬반이 갈릴 수 있고, 동의하는 주민의 비율이 다를 수 있다. 그 와중에서도 진지하게 그리고 민주적으로 논의하여 ‘공적 과제’가 무엇인지에 관해 어느 정도 동의를 이루고 나면, 그것을 달성할 수단과 자원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사람이나 조직을 찾고 예비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계획이라고 한다. 여러 법률이 시군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정책을 계획으로 수립할 것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안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읍면 지역사회를 범위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사자인 주민들이 직접 수립하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계획을 수립할 때와 견주면 계획 실행 과정에서 주민들의 관심이나 참여가 현저하게 떨어지리라는 점은 짐작으로도 그리고 경험으로도 아는 일이다.

읍면 지역사회 주민들의 계획 수립 과정 참여 절차를 밀도 높게 구성하고, 그 절차 이행을 지원해야 한다. 형식적인 공청회, 외관상 주민참여적이지만 실제로는 용역사에 청부하여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을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읍면 계획 수립을 지원하는데, 시군역량강화 예산을 투입하거나 별도의 사업을 마련하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주민들이 ‘읍면 계획’을 수립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물적 자원, 특히 자금이 필요하다. ‘읍면 계획’에 포함된 과제들은 공적인 것이어서, 어느 개인이나 개별 조직의 상업적 비즈니스 방식으로는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즉 돈벌이를 목적으로 누군가가 투자하거나 밑천을 조달할 이유가 없는 일인데, 지역사회 주민 다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일인데, 읍면 지역사회에는 현재 공적 재정의 용처를 결정하거나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행정기관인 읍면사무소도 사실은 재정 측면의 권한이 거의 없다. 시군 본청의 해당 실과에 권한이 있다. 계획과 마찬가지로 재정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이의 수중에 있다. 계획을 주민들이 수립해도, 재정이 없다면 실행할 수 없다. 실행할 수 없는 계획은 무의미하다. 읍면 지역사회의 재정적 자유도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게, 이번 개정법률안의 미비점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다른 수단으로 읍면 지역사회의 재정적 자유도를 늘릴 방도를 마련할 수 있다. 가령, 특정 읍면의 장소적 범위 안에서 시행되는 국고보조 정책사업에 관한 사무를 읍면사무소로 위임 또는 이관하면서, 읍면사무소 행정은 주민자치회를 배경으로 형성된 공론, 즉 ‘읍면 계획’에 따라 그 정책사업을 시행하도록 중앙정부 부처가 조치할 수 있다.


또는 농촌협약사업(농식품부)이나 지역발전투자사업(균특회계) 같은 ‘메뉴판 방식의 포괄보조사업’이 현재 시군 수준의 포괄 편성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일부분이라도 ‘읍면 계획’에 기초한 읍면 수준의 포괄 편성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다. 여기에 주민참여예산을 통합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보충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읍면 수준에 재량을 부여하는 여러 재정 제도를 마련할 수도 있다.


셋째, 지역사회에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장이 필요하지만(읍면 주민자치회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계획 내용을 실현하려면 집중적으로 또는 상시적으로 행동하는 실행 조직이 필요하다. 그것도 서로 다른 영역들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칠 능력이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이를 잠정적으로 ‘읍면 자치 실천조직’이라고 이름 붙이겠다. ‘읍면 자치 실천조직’이란 계획의 실행 과정에서 지역사회 내 조직화를 촉진하고, 계획에 근거해 각종 활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원의 분배ㆍ결합 등 흐름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며, 지역사회가 직면한 공적 문제해결에 앞장서는 주민 조직을 말한다.


사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같은 ‘읍면 자치 실천조직’은 한국 농촌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번의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기 한참 전부터 주민자치회와 결합하여 활동해온 조직들이다. 그처럼 지역사회의 특정 문제해결을 목표로 움직이는 주민 조직이 더 많은 주민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를 논의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각종 포럼과 학습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읍면 자치 실천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천조직이 상근 인력을 운용할 수 있게 재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전글
도시 너머의 생명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