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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돌고 돌아서 돈이라던데
|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2월 9일 |
|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민원이 많다고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10개 군 지역 주민들에게 지급될 ‘기본소득’의 용처(用處)에 관한 이야기다. 정부 방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면 지역 주민이 받을 기본소득 월 15만 원 중 10만 원 이상을 면 지역에서만 쓰게 제한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민원을 빗발치게 했다. 웬만한 면에서는 면 중심지에서 한 달에 10만 원을 쓰려고 해도 쓸 곳이 없다는 민원이다. 어쩌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민원이 일어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계기로 시범사업의 설계를 현실에 더 잘 맞게 고쳐야 할 테다.
기본소득과 관련해 따져볼 쟁점은 여럿이다. 첫째,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이 게을러져 일을 덜 하게 되는가? 둘째, 기본소득에 들어가는 돈(세금)을 누가 어떻게 낼 것인가? 셋째,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게 맞는가, 특정 대상을 선별해 지급하는 게 맞는가? 넷째,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복지 급여 및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보완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다섯째,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여섯째, 기본소득으로 돈이 풀리면 지역경제 순환 효과가 발생하는가? 이들 쟁점을 논의하기에는 지면과 내 능력이 모자란다.
여기에서는 당면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풀릴 돈의 사용처’ 문제에 관해서만 짚어보자.
농촌에서는 대체로 군청 소재지 읍에 군 전체 인구의 30~60%가 거주하고, 군청소재지가 아닌 6~12개 정도의 읍과 면에 나머지 인구가 산다. 전국의 1200여 면 중에서 인구가 3000명 정도면 중간 수준이다. 주민 3000명이 사는 면의 가구들에 일 년에 54억 원의 돈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54억 원이라는 많은 돈을 전부 면 지역에서만 주민들의 일상생활 용도로 소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 3분의 1은 군청소재지 읍에서도 쓸 수 있게 허용한다고 해도, 일 년 동안 36억 원의 돈이 면에서 일상생활 용도로만 소비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남는다. 거주 인구가 3000명에 못 미치는 중간 크기 미만의 면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런 숫자를 따져보는 것은, 기본소득이라는 발상의 철학적 또는 도덕적 측면은 논외로 치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의 실행 측면만을 우선 살펴보자는 것이다.
주민들은 ‘돈을 주면서 언제 어디서 쓸 것인지를 쪼잔하게 정하느냐’라며 볼멘소리로 민원을 제기한다. 오늘 아침에 통화한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 지역의 어느 군수는 ‘공공 재정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해 농촌 지역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 삶의 질도 향상하려는고 정책사업을 시작했다면, 편성한 예산을 써보지도 못하는 불용(不用)의 사태는 방지해야 할 것 아니냐’라면서 걱정한다.
다른 한편으로 전해 듣기로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의 내용을 설계하면서 돈이 풀리면 군청소재지 읍에 죄다 풀려서 정작 경제적 활력이 절실히 필요한 면 지역에서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전문가들이나 관료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일리 있는 말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인구 몇 명의 면 지역에서 소비될 만한 기본소득 자금의 규모를 예상하고, 그것에 더해서 면 지역의 소비를 늘릴 방안을 찾아가면서 사업시행지침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정해나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니면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읍면 지역의 인구 규모를 고려해 주민들의 일상생활 소비 규모와 패턴을 면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조사한 자료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월 15만 원 중 10만 원이 적절할지 아니면 5만 원이 적절할지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간접적으로나마 참고할 만한 자료는 조금 있다. 수년 전 이야기지만 인구 3000명쯤 거주하는 면 지역 한곳을 골라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면의 어느 마을에서 농협, 상점, 면사무소, 음식점, 이발소, 철물점 등이 있는 면소재지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총량과 마을에서 군청소재지 읍까지 이동하는 총량이 거의 같았다. 주민들이 면소재지나 군청소재지로 나가는 것은 대개는 소비하러 가는 것이기에, 면에 사는 농촌 주민의 장소별 소비 총량은 면과 군청소재지 읍에서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는 군청소재지 읍에서 소비에 쓰는 돈이 더 많을 것이다.
또 다른 통계로, 전국사업체조사(2023년) 자료를 살펴보면 식료품점, 음식점, 음료점 및 주점, 학원, 스포츠업, 오락업, 이미용 및 목욕업, 세탁업 등 이른바 ‘9개 생활업종’ 사업체의 분포를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읍 지역과 면 지역의 평균값을 비교하면, 식료품점은 면보다 읍에 7배 더 많다. 세탁업은 약 8배, 이미용 및 목욕업은 약 12배였다. 면 지역에서의 일상생활 서비스 공급이 면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적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하면, 현재 소문이 난 ‘15만 원 중 10만 원은 면 지역에서 써야 한다’는 지침(안)은 상당한 예산 불용 사태를 낳을 개연성이 꽤 크다. 면에 사는 농촌 주민 중에는 상업적 소비에 익숙하지 않고 어디 다니기도 어려운 ‘고령층 교통약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기본소득 사용처 제한의 구체적인 내용은 근거 있는 분석을 토대로 조정해서 불용을 막아야 할 것 같다. 돈은 돌고 돌아야 제 몫을 할 테니까 말이다.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하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겨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기본소득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근본 문제에 도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물고기 잡는 법(돈 버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물고기(돈)을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찬성론자들은 기후 변화 때문에 동네 앞바다에 이미 물고기(돈)가 없는데 물고기 잡는 법(돈 버는 법)을 가르쳐봤자 소용없고 물고기(돈)를 직접 주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농촌의 면 지역만을 놓고 보면, 물고기를 실어 올 배(주민들이 돈을 가지고 가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곳)가 없는 게 문제다. 도시라면 돈을 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장사할 사람’이 나타나겠지만, 농촌 면 지역에서는 공급 기반이 이미 심각하게 해체되었다.
상업적인 것이든 공공적인 것이든 창업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창업할 만했다면 벌써 창업이 이루어졌을 터이다. 그러니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하되, 공급 사업체가 큰 이익을 못 거두거나 조금 적자를 보더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공이 지원하고, 주민이 경영하는 방식의 사업체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 경제 혹은 사회연대경제가 호명(呼名)된다.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어느 군, 인구 3200명의 면 지역에서 ‘○○면에서 일하실 미용실 사장님을 공개 수배합니다’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만든 것을 보았다. 미용실 하나 입점(?)하기도 어려운 것이 한국 농촌의 현실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분명히 지역사회에 경제적ㆍ사회적 활력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테다. 다만, 마중물의 양이 많고 적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시작하는 동작 요령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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