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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이렇게 빨리 없어져도 괜찮을까
|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3월 10일 |
|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문전옥답(門前沃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농사짓기 편한 곳의 기름진 농지여도 조만간 도시가 들어설 땅, 넓은 자동차 도로가 놓일 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소출 많은 논밭을 비싼 값에 살 사람은 부지런히 농사지을 농민뿐이다. 그 수가 많지 않다. 소출이 많은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지의 생산성이 농지 가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개발호재(開發好材) 여부가 더 중요하다. 농지를 사들였다가 되팔았을 때 얻을 차익에 대한 기대가 농지의 가치를 대표한다. 논밭이 얼마나 비옥한지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화폐와의 교환 가능성 그리고 교환했을 때 얻으리라고 예상되는 금액의 크기만 고려하면 된다.
농지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로 평가되는 시대여서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던 장관 후보의 청문회 발언도 가능했다. 코미디인지 망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말에 웃다가 슬펐던 게 약 18년 전이었다. 그동안 바뀐 것은 없다. 아니, 변한 게 하나 있다. 2008년에 한국의 농지 면적은 약 176만 ha였는데, 2025년에는 약 150만 ha로 그 기간에 사라진 농지의 비율이 14.8%다. 정확하게는 사라진 게 아니다. 땅이 어디 가겠는가? 농사짓지 않고 달리 쓰이게 된, 즉 전용(轉用)된 농지의 면적이 26만 ha다. 서울특별시 면적의 네 배가 넘는다.
내친김에 더 살펴보자.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서 농지 면적은 약 35% 감소했다. 우리에게 낯익은 몇몇 국가들에서 같은 기간 농지는 얼마나 줄었는지 그 감소율을 찾아보았다. 하나하나 자료를 찾기가 귀찮아 AI를 써서 검색했다. 일본 30%, 프랑스 11%, 영국 8%, 미국 6%, 독일 5%, 스위스 1%의 순이었다. 곡물자급률 자료를 같이 살펴보면 뚜렷한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대략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의 자료를 기준으로 따져서, 곡물자급률이 낮은 국가부터 열거하면 한국 20%, 일본 28%, 프랑스 100% 이상, 영국 59%, 미국 100% 이상, 독일 79%, 스위스 50%의 순이었다. 농지 보전에 실패한 혹은 무관심한 국가의 곡물자급률이 현저하게 낮다. 한국과 일본이 그러한데, 일본보다 한국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런 자료를 들이밀면 ‘곡물자급률이 아니라 식량자급률로 따져야 한다’라거나 ‘부족한 부분은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면 된다’라는 식의 반론이 분명히 있을 줄 안다. 미리 쐐기를 박아둔다. 곡물자급률이 아니라 식량자급률로 바꿔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략 10년 전의 일이다. 정부의 중기재정 계획과 관련된 연구에 급작스럽게 잠깐 참여한 적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주요 정책 몇 가지에 대해서 검토하고 재정 소요를 조정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귀농 정책이었다. 그 당시에 ‘쌀생산조정제’를 검토하고 제안한 다른 연구자가 ‘재정을 들여서라도 쌀 재배면적을 줄이고 대신 다른 곡물을 재배하도록 촉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자료를 발표하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재정 당국의 관료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농지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 다음 회의에서는 향후 10년 동안의 농지 감축 시나리오를 제출해달라.’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지는 수십 년, 수백 년 숱하게 많은 노동과 자본을 투자해 만든 것으로, 그 농지를 전용하자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과실만 따먹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농지는 다른 용도로 쓰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혹시 긴급한 필요가 생겼을 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깨부수고 죄다 걷어낸 다음 농사지을 수 있겠느냐?’라며, 내 몫도 아닌데 발언권을 얻어 화를 낸 기억이 난다.
바로 지금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리고 금융시장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에너지가 아니라 먹거리를 두고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유무역체제의 상징이자 실체였던 세계자유무역기구(WTO)가 출범한 게 1995년 1월 1일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 강산도 변한다는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굳건하리라 믿었던 자유무역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천년고도 경주에서 우리가 가져다 바친 금관은 자유무역 질서를 깨부수는 폭력배를 달래고 환심을 사려는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외국에서 농산물을 값싸게 사 먹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농지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은 그동안 ‘소유권’에 관한 것이었다. 즉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관한 것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농지를 많이 소유한 지주와 그렇지 못한 소작인들 사이에 농지 소유권을 둘러싼 대립이 문제였다. 1950년대의 농지개혁과 자작농 체제로의 이행은 그런 배경에서 일어난 중대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 사회가 압축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즉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등장한 쟁점도 농지 소유권에 관한 것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소작료를 많이 받아 가는 재촌지주가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와 자작농 사이의 대립이 문제가 된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최근에 부동산 투기 문제가 여기에 얹히면서 ‘농지 전수조사’를 추진한다는 등 움직임이 부산하다. 끓는 국에 국자를 휘젓고 싶지는 않지만, 이참에 ‘소유권’ 문제 외에도 ‘농지 보전’ 문제도 심각하게 따져야 한다. 농지의 소유권 못지않게 용도를 둘러싼 경합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격자형 고속도로망을 갖춘다면서, 신도시를 건설한다면서, 택지를 공급한다면서,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면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태양광 발전을 해야 한다면서 등등의 갖은 이유로 농지가 전용된다. 저마다 일리가 있겠지만, 일리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농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 농지 전용에 반대하는 주장은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점을 안다.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인에게는 표 떨어지는 소리이고, 농지를 가진 소유주에게는 돈 떨어지는 소리이며, 농지를 사려는 누군가에게는 전용해서 막대한 차익을 얻을 기회가 날아가는 소리다. 그래도 누군가는 농지 보전을 염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랜 세월 공들여 가꾼 농토를 농사 아닌 다른 용도로 쓰는 걸, 우리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세의 먹거리보다 당장의 화폐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런 발상의 밑바닥에는, 화폐를 떠받드는 물신주의가 있다. 사람들의 욕망 자체를 쉽사리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안다. 그래도 ‘농지는 농사에만 쓰자’라는, 즉 농지농용(農地農用)의 원칙 정도는 세워 두고 여러 가지 방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농지가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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