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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청년들이 농촌에서 공공의 일을 하게 하자
|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5월 12일 |
|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발굴하라고 주문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공공서비스 일자리가 한국에서는 양도 부족하고 질도 낮으니, 각 부처가 생산적인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찾아보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국세 체납 관리, 산업안전 지킴이 같은 예도 거론되었다. 몇 명, 몇십 명의 일자리라도 사회적 편익이 크다면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농촌에서 청년들이 공공의 일에 종사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청년농 육성이나 청년 창업 지원 같은 정책은 이미 있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농촌에 필요한 청년의 역할을 농업인이나 소상공인으로만 좁혀서는 곤란하다. 농촌에는 창업하지 않아도, 아니 창업이 아니기 때문에 더 절실한 청년의 일이 있다. 농촌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일거리가 너무 많은데도 그것이 정당한 일자리로 조직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임금을 지급할 주체가 없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인데도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그 일을 일자리로 바꾸어 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줄어드는 것은 사람 숫자만이 아니다.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관계, 서로 돌보는 기능, 마을의 일을 의논하고 처리하는 능력도 함께 약해진다. 혼자 사는 노인의 안부를 살피는 일, 병원이나 장보기에 동행하는 일, 방과 후 시간에 아동ㆍ청소년을 돌보는 일, 작은 도서관 같은 마을 공간을 열어두는 일, 주민자치회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활동을 돕는 일, 빈집과 유휴공간을 조사하고 활용 방안을 찾는 일,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를 점검하고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일, 행정의 정책사업을 주민의 언어로 풀어 설명하고 주민의 필요를 다시 행정에 전하는 일. 이런 일들은 대개 시장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로 팔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기도 어렵다.
바로 그래서 공공서비스 일자리다. 농촌에는 시장도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행정도 세밀하게 닿지 못하는 영역이 넓다. 그 틈을 지금까지는 주민들의 자원봉사, 활동가들의 헌신,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불안정한 지원 예산으로 메워 왔다. 하지만 그렇게만 두어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농촌에 공익적인 일은 이미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일자리’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억지로 새로운 일을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농촌 현장에 널려 있는 공공적 일거리를 안정된 일자리로 전환하는 일이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정책을 들 수 있다. 도시 청년 등이 인구 과소 지역으로 옮겨 지역협력 활동을 수행하고, 일정 기간 공공재정의 지원을 받는다. 지역 자원 조사, 생활 지원, 농산물 판매, 관광, 정보 발신, 주민 활동 지원 등 하는 일은 지역마다 다르다. 이 정책의 장점은 청년을 단지 ‘이주자’나 ‘창업자’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청년이 지역사회 안에서 필요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이름이 무엇이든 핵심은 분명하다. 청년에게 농촌의 공익적 일거리를 맡기고, 그 노동에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며, 일정 기간 지역사회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 정책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농촌 청년 일자리 정책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청년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고, 모든 청년이 사업가가 될 수도 없다. 창업은 때로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이 된다. 농촌에 살 의지가 있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청년에게 공공 부문에서 일할 경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 농촌에는 ‘사장님’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돌봄 실천가, 지역 조사원, 주민 조직가, 생활서비스 기획자, 마을교육 활동가도 필요하다. 농촌 청년 일자리 정책은 청년에게 “사업을 하라”라고 권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공의 일을 하라. 그 노동을 사회가 보상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농촌 공공서비스가 명백한 공익적 노동이라는 점이다. 고립된 노인의 일상을 살피는 일은 복지정책이다.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 일은 교통정책이다. 마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교육정책이다. 빈집과 유휴시설을 관리하는 일은 정주환경정책이다. 주민자치 활동을 돕는 일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농촌에서는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다. 부처별 칸막이로 나누어 처리하기 어려운 생활 문제들이 읍면이라는 현장에서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래서 농촌 공공서비스 일자리는 단순한 고용대책이 아니다. 농촌의 생활 기반을 유지하는 정책이고, 지역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세 번째 이유는 농촌 지역사회에는 ‘조직화’라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농촌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 전체가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의논하고,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엮어내는 힘이다. 그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는 회의를 준비하고, 말을 잇고, 자료를 만들고, 행정을 설득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그것도 노동이다. 더구나 그것은 아무나 즉석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고, 지역의 사정을 읽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너무 자주 ‘좋은 뜻을 지닌 사람들의 봉사’로만 취급해 왔다. 이제는 그것을 공익적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
정책을 설계할 때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첫째, 단기 일자리 사업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몇 달짜리 기간제 일자리로는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다. 적어도 3년 안팎의 활동 기간, 생활임금, 사회보험, 교육훈련, 이후 진로 지원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주민들이 주도하는 읍면 단위의 계획과 연결되어야 한다. 군청 공무원이 사람을 뽑아 임의로 배치하는 방식은 효과가 약하다. 읍면 주민자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회적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조직 등이 함께 지역의 필요를 정리하고, 그 필요에 맞추어 청년의 역할을 정해야 한다.
셋째, 청년을 값싼 만능 일꾼으로 써서는 안 된다. 행정 문서도 작성하고, 행사도 치르고, 어르신도 모시고, 홍보물도 만들라는 식이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역할은 분명해야 하고, 배움의 과정도 있어야 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넷째, 사회적 경제 조직 등 지역사회의 주민 조직을 중요한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이 조직들이야말로 공공과 주민 사이에서 공공서비스를 생활세계의 언어로 바꾸어 내는 곳이다. 청년 일자리는 이런 조직들과 결합할 때 실질적인 힘을 얻는다.
다섯째, 시설보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농촌을 지탱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다.
대통령의 주문이 일회성 발언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가 정말로 생산적인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찾겠다면, 농촌을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이미 일이 있다. 다만 시장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정책이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농촌의 미래를 말하려면 청년이 농촌에서 공공의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도 열어야 한다. 농촌 공공서비스 청년 일자리는 복지 지출이 아니다. 지역의 관계를 잇고, 주민의 자치를 돕고, 생활서비스의 빈틈을 메우는 사회적 투자다. 국가가 마땅히 뒷받침해야 할 공익적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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