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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농촌 정책의 문법에 필요한 ‘사회연대경제’의 논리
|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6월 9일 |
|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농촌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곧장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농장 같은 ‘명칭’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 조직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말도 옳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지금 정부가 농촌에서 사회연대경제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지만, 농촌 정책의 문법이 아직 사회연대경제의 논리를 수용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사회연대경제 조직에 보조금을 더 주자는 단순한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연대경제를 농촌 주민의 생활 문제를 다루는 거버넌스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누가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발설하여 공론장에 발의하는가?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가? 누가 인적ㆍ물적ㆍ사회적 자원을 모으고 연결하는가? 지역사회 주민 조직과 행정은 책임을 어떻게 나누는가? 사회연대경제는 바로 이 질문들과 관련된다.
농촌 주민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여러 사람이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인구는 줄고, 초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상점과 병원과 대중교통과 문화시설은 사라진다. 시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행정은 법령과 예산의 틀 안에서 움직이지만, 읍·면과 마을의 생활세계까지 촘촘하게 닿기 어렵다. 돌봄, 이동, 먹거리, 교육, 주거 수리, 일상생활의 작은 도움 같은 문제는 어느 정부 부처의 보조금 지원사업 하나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행정과 협력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구성하는 실천이 절실해진다. 마을의 공동부엌을 열고,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가고, 아이들을 돌보고, 빈 공간을 고쳐 함께 쓰고, 작은 식당이나 점방(店房)을 유지하고, 지역 농산물을 지역 안에서 순환시키는 일들이다. 이것이 농촌에서 사회연대경제가 갖는 현실적 의미다. 협동조합이라는 법인격을 확보하는 일보다 ‘그 활동이 지역사회의 필요에서 출발하는가?’, ‘주민의 참여와 책임을 조직하는가?’, ‘행정과 대등한 협력 관계를 만드는가?’라는 물음에 합당하게 답하는 실천이 먼저다.
정부 정책도 이런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조만간 사회연대경제 관련 입법이 진행될 전망이며, 국무회의에서도 사회연대경제 관련 토론이 여러 차례 있었다. 사회연대경제 관련 정책을 농촌 정책의 영역에서 수용해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그것은 공모사업 하나를 더 만드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공모사업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모사업만으로는 지역사회가 강해지지 않는다. 사업 공고가 나면 법인을 급히 만들고, 지침에 맞추어 활동을 설계하고, 정산이 끝나면 관계도 흩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의 문제의식은 행정 서류 속에 갇히고, 주민 활동가들은 정산과 평가에 지쳐 소진된다.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사회연대경제 정책의 출발점은 읍·면 단위의 생활 문제여야 한다. 마을은 너무 작고, 시·군은 너무 넓을 때가 많다. 읍·면은 주민의 생활세계와 행정의 책임이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장소 단위다. 어느 읍·면에 어떤 서비스 공백이 있는지, 어떤 지역사회 조직과 장소와 관계망이 있는지,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둘째, 개별 조직 하나를 지원하는 데 머물지 말고 연결망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을 예로 들면, 노인을 방문하는 주민, 반찬을 만드는 부녀회, 이동을 돕는 자원봉사자, 보건지소, 복지기관, 주민자치회, 농협, 이러저러한 사회적 협동조합 등이 따로 움직이면 그건 연대가 아니다. 이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역할을 나누며, 필요한 경우 예산와 장소와 인력을 함께 쓰는 구조가 필요하다. 사회연대경제의 핵심 자원은 돈이 아니라 관계다.
셋째, 행정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전적으로 민간 부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공공의 책임을 주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주민이 알아서 하라’라는 말은 사회연대경제가 아니다. 공공기관은,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에 책임이 있는 행위자이며 연대의 구성원이며 경제의 주체다. 지방자치단체는 제도와 예산과 정보를 제공하고, 공공시설을 열고, 필요한 경우 위탁이나 협약을 통해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주민 조직은 필요를 발견하고 서비스를 조직하며, 행정은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농촌에 사는 주민의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소득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안의 소비를 조금이나마 순환시키는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만으로 농촌의 생활 서비스 공백이 저절로 메워지지는 않는다. 소득 기반이 주민의 삶을 받치는 한 축이라면, 사회연대경제는 돌봄, 이동, 먹거리, 교육, 문화 같은 생활의 필요를 지역사회가 함께 조직하는 다른 축이다. 둘은 서로를 대신하는 정책이 아니라 함께 묶여야 할 정책이다.
‘농촌 지역공동체 기반 경제ㆍ사회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주민 주도의 경제·사회서비스를 지원할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이 법률의 의의는 새로운 보조사업이 하나 만들거나 관련 보조사업 예산을 증액할 구실이 생겼다는 데 있지 않다. 농촌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 지역사회의 사회적 책임성을 정책의 원리로 내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공모사업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자기 문제를 말하고, 주민 조직이 실행 주체로 성장하며, 행정이 책임 있는 파트너가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농촌의 사회연대경제는 거창한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점심 한 끼를 함께 마련하는 일,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가는 일,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지키는 일, 주민 공동이용시설을 다시 여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작은 일들이 서로 연결되면 지역사회가 된다.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회연대경제이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이 로컬 거버넌스다. 정부의 정책도 이제 그 지점을 보아야 한다. 조직 몇 개를 지원하는 방식에 머물지 말고, 농촌 지역사회가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힘을 갖추는 일에 조력(助力)해야 한다. 그것이 농촌에서 사회연대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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