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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친환경농업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잊었는가
|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6월 30일 |
|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난 일요일 우리나라의 유기농업 발상지인 홍성군에서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곁붙어 있었다. 지역에서 20년 안팎으로 유기농업을 실천해 온 농민 둘과 농사짓지 않지만 지역의 이런저런 활동에 적극적인 주민 둘이 있었다. 작은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독자들과 공유하는 게 좋을 듯하다. 내 의견을 조금 보태어 정리해본다.
농민들은 왜 친환경농업을 시작했는가? 농약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쓴, 그래서 몸에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는가? 물론 그것도 중요한 목표다. 소비자가 안전한 농산물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고, 농민이 그런 농산물을 생산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친환경농업의 존재이유(raison d'etre)를 충분히 말할 수 없다. 친환경농업은 본디 농업이 기대고 있는 환경생태계를 보전하려는 실천이었다. 조금 단순하게 말하면, 농업의 바탕인 흙과 물을 돌보는 농업이었다.
그런데 지난 25년 동안 한국의 친환경농업은 어느새 ‘몸에 좋은 먹거리’의 문제로만 인지되는 듯하다. 소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생산자 가운데서도 친환경농업을 ‘인증 농산물을 생산해 시장에 내는 일’쯤으로만 아는 이들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증제도를 정비하고, 기반시설에 투자하고, 시장을 넓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흙과 물을 보전하는 농업이라는 처음 뜻은 점차 흐려졌다.
1990년대 후반 친환경농업 정책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친환경농산물 소비가 늘면 생산자가 늘고, 생산자가 늘면 친환경 재배면적이 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환경도 보전될 것이라고 가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장 확대와 환경보전 사이의 인과관계는 자동으로 성립되는 게 아니다. 인증면적이 늘어난다고 해서 지역의 물길이 되살아나고, 논두렁과 둠벙의 생물이 늘어나며, 마을의 농업환경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환경생태계는 개별 농산물의 속성이 아니라 지역의 조건이다.
친환경농업이 돌보아야 할 환경은 농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농지와 이어진 하천, 농업용수, 논두렁, 둠벙, 마을 주변의 숲, 생물다양성 등이 모두 농업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친환경농업 정책은 인증제도나 친환경농산물 시장에 초점을 두어 왔다. 지역에서 농업환경을 함께 관리하려는 정책은 오히려 주변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친환경농업이 진정으로 환경을 말하려면, 농지 밖의 환경생태계까지 시야 안에 두어야 한다.
인증제도가 필요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인증이 친환경농업 실천을 돕는 장치에 머물지 않고, 어느 순간 실천의 시야를 좁히는 장치가 되었다는 데 있다.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이 불합리하게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기준 안에 들어왔는가’를 따지는 일이 앞섰다. 지역의 땅과 물을 어떻게 함께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리고, 친환경농산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생산자 조직화도 비슷했다. 친환경농업 생산자 조직화라고 하면 흔히 유통 조직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런 조직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이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가 어찌 유통뿐이겠는가? 친환경농사를 서로 권하고, 실패와 위험을 함께 견디고 공부하며, 지역의 물과 흙을 살피며, 지역의 농업환경을 함께 관리할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조직이 필요하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이 충분히 커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 친환경농민들이 직불금 확대, 학교급식과 임산부 꾸러미 같은 공공시장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서 멈추면 무언가 어긋난다. 시장에서 버티는 문제는 크게 말하면서, 지역의 환경을 함께 돌보는 문제는 작게 말해 온 것은 아닐까?
친환경농업의 여정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성(territoriality)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성(autonomy)이다. 지역성은 친환경농업 실천이 그 지역의 땅, 흙, 물, 생태계, 농민 관계, 마을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자율성은 농민들이 정부 사업의 대상자나 인증제도의 수검자가 아니라, 스스로 친환경농업의 의미를 해석하고 실천을 조직하는 주체라는 감각이다.
20여년 전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던 농민들 사이에서는 그런 자율성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 소비자를 마을로 초대해 농업과 생태환경의 관계를 직접 설명했다. 왜 이런 농사를 짓는지, 그런 실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실천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친환경농업의 존재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정부가 어떤 지원정책을 내놓는지 먼저 살피고, 인증 기준을 어떻게 통과할지 계산하며, 시장 기회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기다리는 태도가 몸에 붙은 것은 아닌가? 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정책의 뒤를 좇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친환경농업의 뜻을 스스로 말하고 지역에서 실천을 조직하는 힘은 약해질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농촌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다. 흔히 농업은 농촌을 유지하는 기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도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 농업생산의 규모화가 거의 유일한 해법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규모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농민 숫자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민이 줄고 관계가 줄고 일상적 돌봄과 협동이 약해진다면, 그런 농업이 농촌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조금 거칠게 말하면, 농촌과 공생하는 농업이 있고 농촌에 적대적인 농업도 있을 수 있다. 규모화 일변도의 농업은 농촌 지역사회에 적대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지역사회 안에서 배제된 이들을 돌보는 사회적 농업이나 지역의 생태환경을 돌보는 친환경농업 등은 농촌과 공생하는 농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때에만 그런 가능성이 열린다.
그간의 친환경농업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말 흙과 물에 신경 쓰고 있는가?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은 서로 의지하며 지역의 환경을 함께 돌볼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정부 정책은 인증 농산물 시장의 확대만이 아니라 지역 환경생태계 보전을 지원하고 있는가?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친환경농업의 처음 뜻을 오늘의 농촌 현실 속에서 다시 새기자는 말이다. 시장이 아니라 지역을 그리고 농촌 지역사회의 자율성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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