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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브리프

농업유산, 살아 있는 자산으로 만들자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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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9월 9일
성 주 인(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 7월 경북 울진군의 금강송 산지농업시스템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공식 등재되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지역사회가 전통 지식, 경관, 생물다양성 등을 살리고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형성해온 지속가능한 농업을 보전하고자 2002년에 도입된 제도이다. 현재 29개국 102개 지역에 세계농업유산이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농식품부가 처음으로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총 19개소의 국가중요농업유산이 지정되었다. 청산도 구들장 논농업 및 제주 밭담농업, 하동 전통차 등 9개 지역은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적지 않은 숫자이다.


근대화·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전통 농경사회와 급속도로 멀어져온 우리 상황에 비춰볼 때 이러한 농업유산 발굴 실적은 이례적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시책, 주민들의 유산 보전활동이 바탕이 되었고, 무엇보다 한국농어촌유산학회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알려지지 않은 농업유산을 찾아내어 농업 생산 과정에 얽혀 있는 전통 지식, 가치, 문화 등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세계농업유산 등재까지의 각별한 노력이 유산 자원의 유지·전승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통 방식의 농산물 생산, 문화와 경관 보전 등 유산 자원의 가치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은 또 다른 숙제이다. 농가의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은 지역의 전통적 지식, 기술에 기반하여 지탱되는 농업유산 지역에서 특히 큰 위협이다.


소득원으로서 농산물 생산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농업유산 지정이 고부가가치 작물 생산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역이 처한 조건에 적응하면서 주변 환경과 조화되는 농법을 형성해온 특성상 대량의 소득 창출이 쉽지 않은 것이 여러 농업유산 지역 농산물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여러 지자체들은 농업유산을 활용한 방문객 유치, 농촌융복합산업 개발 등으로 연계 소득을 확보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울진군의 경우 금강송 숲길 탐방 프로그램 운영, 산채 재배단지 조성, 보부상 문화를 활용한 주막촌 운영, 마을축제 개최 등을 통해 주민 소득 기회를 창출하려는 구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농업유산 보전‧활용을 위한 지자체들의 시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 또는 세계 중요농업유산 등재 당시에는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농업유산 관련 업무는 많은 지자체에서 해당 작물을 담당하는 실무자 한두 명 선에서 수행되는 형편이다. 더구나 농업유산에 대한 중앙정부 예산 지원도 제한적이라 지자체 입장에서는 관련 시책을 확대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농업유산은 과거의 유물일 수만은 없다. 다양한 지역 자원과 결합할 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울진을 예로 들자면 금강소나무 숲만이 아니라 불영사, 왕피천 생태경관, 더 나아가 온천, 바다 같은 지역 관광자원까지 어우러져야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미래 인력을 육성하는 기획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농업유산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 자원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인적 자원을 확충하는 구상을 마련하려면 현재의 농업유산 업무 범위를 넘어 지자체의 다양한 부서들이 참여하는 협업이 요구된다. 현재 시·군들이 진행 중인 농촌공간계획 수립 과정에서 그런 계기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 농촌공간재구조화법에 근거한 농업유산지구 같은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다.


하지만 농업유산은 제도나 계획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 무엇보다 농업인과 주민, 지자체 공무원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업유산 지정은 관심을 환기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앞으로 농업유산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살아 있는 자산이 되려면, 이를 보전하고 활용할 지역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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