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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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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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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경환
농민신문  시론|  2014년 7월 30일 
최 경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브라질 월드컵은 독일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동안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던 스페인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나왔고,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개최국 브라질은 4위에 머물렀다. 2002년 개최국의 이점을 안고 4강에 올랐던 우리나라도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은 아무리 축구 강국이라고 해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강자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승국 독일은 10여년 전부터 기본기를 충실히 갖추는 것은 물론 각국의 다양한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치밀히 준비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찌감치 탈락해 흥미는 반감됐지만 그나마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국내 어느 방송사의 해설자였다. 그가 스페인의 탈락은 물론 어느 팀이 승리할지, 누가 결승골을 넣을 것인지도 맞췄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영험한 점쟁이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나는 해설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는 과거 기록을 꼼꼼히 살펴 다음 경기를 치를 팀(국가)들의 경기 결과를 예측해 본 것뿐”이라고 했다. 월드컵에서도 첨단과학과 기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중계방송 중 수시로 선수 개개인이 뛴 시간과 거리며 어디에서 어떻게 뛰었는지에 대한 기록과 그림이 실시간으로 제공됐다. 이를 토대로 선수 개개인은 물론 팀플레이의 문제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중계방송을 보다가 문득 우리 농업의 기록 상황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600여 과수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영농일지를 자세하게 작성하는 농가가 28.3%, 개략적으로 작성하는 농가는 25.7%, 중요사항만 기록하는 농가는 44.6%였다.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는 농가는 1.4%에 불과해 대부분의 농업인은 나름대로 농사기록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으나 조그만 기록이라도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영농계획을 세우는 데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평택의 한 농업인은 50여년간 일기형식으로 써온 농사기록을 몇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나주의 한 농업인은 80세가 넘은 지금도 꼼꼼히 농사에 관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한다. 50여년의 기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록이 자세하고 정확할수록 좋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자료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그릇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농지원부(지적도)상의 농지면적과 실제 경작면적은 다를 수 있는데, 농지원부상의 면적 자료를 그대로 쓰게 되면 커다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산간지역이나 구릉지의 경우 논두렁·밭두렁으로 빠지는 면적이 적지 않다. 농로나 수로 등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농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자투리땅은 놀리는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장을 다니다보면 과수원에 어떤 품종이 몇그루나 심어졌는지 파악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료나 농약을 뿌리려면 적정한 양을 가늠하기 어렵다.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다면 정확한 수확량조사는 물론 손해평가도 공정하게 이뤄지기 어려워 오해를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계획적인 영농을 위해서도 구체적이고 정확한 기록은 필수이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농정이나 농업경영체등록제, 각종 직접지불제 등도 개별 농가의 정확한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지금부터 농사와 관련된 소소한 것이라도 좀 더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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