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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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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를 통해 본 농업·농촌의 가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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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농민신문 시론 | 2012년 4월 30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개방화가 진전될수록 우리 농업과 식품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된장이나 김치를 포함해 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을 이제는 사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수입농산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또 주로 소비하는 식품도 곡물과 채식 위주에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서구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 역시 수입축산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결과 외국농축산물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식량자급률은 27%대로 떨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제사상도 외국산 농산물로 차려지고 있고 칠레산 포도와 덴마크산 삼겹살, 프랑스산 와인 등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도 모르는 외국산 식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마시고 있다.

 

  이처럼 식품이 우리 농업과 멀어지면서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民以食爲天)’라던가 ‘농사가 천하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여 중시되던 농업이 산업이자 생계수단으로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농림어업생산액은 국민총생산액의 3%에 미치지 못하며, 농림어업인구는 총취업인구의 6%에 불과하다.

 

  2011년 농림어업총조사 결과를 보면 억대농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1년에 1,000만원어치도 못 파는 농가가 65%나 된다. 정부는 농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론이 분분하다. 최근에는 수입을 통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농업인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머지않아 고향에 두고 온 늙은 부모마저 세상을 떠나면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농업인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농업인의 생계 문제와 농촌 지역사회의 위축은 단지 농업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당장은 돈이 있으니 외국에서 식량을 사다 먹을 수 있지만 기상이변으로 전 세계에 흉년이 들면 어느 나라가 식량을 판매할 것인가? 2011년 식량 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난 알제리와 이집트는 물론 2010년 식량 수출 금지조치를 내린 러시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계 곡물 가격은 널뛰기를 하고 있다.

 

  또한 수입농산물은 장거리 수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선도 유지나 부패 방지를 위해 화학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어 안전성을 위협하며, 서구식 식생활로 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국민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음식으로 인해 질병을 앓게 되면 그만큼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수산물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전통식문화가 단절되면서 나타나는 문제로 식탁과 농장의 거리를 좁히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삶터이자 쉼터로서 농업과 농촌 지역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제고장에서 생산한 농식품 그리고 이를 차별적으로 유통하는 농업인의 노력이 바로 건강한 국민 식생활을 유지하는 축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흙과 물과 바람과 문화가 고유한 맛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이 땅의 식품창고를 지키는 농업의 소중함을 깨닫고, 국토를 가꾸는 농민들의 수고에 화답해야 한다. 먹을거리를 통해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농업과 농촌의 활성화를 통해서 건강한 식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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