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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안정제도가 우려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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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한두봉

동아일보 기고 | 2024년 2월 7일
한 두 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걱정 없이 농사짓고 싶은 것이 농업인의 소망이다. 2022년 농업소득이 감소하고, 농산물 가격 불안정도 커지면서 소득 및 경영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3년 4월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 재의를 요구했고 이후 후속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발의된 개정안 핵심은 품목별 가격안정제도 도입이다. 쌀과 주요 농산물 기준가격을 정하고 시장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으면 그 차액 일부를 보전해 소득을 안정시키자는 것이다. 생산비와 물가인상률을 고려해 기준가격을 설정하자는 내용도 담고 있어 사실상 가격 지지 제도다.


농산물 가격안정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우려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산물 가격이 보장되면 농업인은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유인이 사라진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농업인은 수요를 생각하지 않고 생산할 것이다. 과거 추곡수매제나 목표가격과의 차액을 보상하는 쌀 변동직불제를 운영할 때처럼 생산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생산이 늘어나면 시장가격은 낮아지고 차액 보전에 따른 재정 부담이 계속 늘어나 이 제도는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농산물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쌀에서 다른 품목 또는 쌀 이외 품목 간의 전작(轉作)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시장 원리에 따른 자율적 수급 안정이 사라지게 돼 부작용이 클 것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미곡 가격이 기준 이상으로 폭락하거나 폭락 우려가 있으면 사후적으로 시장 격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물량까지 조절하려 한다면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으리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미국이나 일본을 예로 들어 농산물 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들 국가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업 강대국 미국은 세계 곡물 수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손실보상제도와 동시에 농업위험보상제도(조수입보상)를 운영한다. 미국 농민은 정부 지원을 받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고 농업 경영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농민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농가가 정부 지원을 받겠다고 결정해도 가격손실보상제도나 농업위험보상제도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가격손실보상제도는 최소한의 소득 지지로서 기준가격은 생산비보다 낮고 기준면적의 85%만 보상한다. 일본에서 채소 가격이 안정적인 이유는 가격 안정 대책보다 주산지 중심으로 재배면적이 안정돼 있고, 농협 중심으로 수급관리 체계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래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인의 소득 안정과 재정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대통령 공약으로 확보된 공익직불금 5조 원을 활용해 농업인이 안정적으로 농사 짓고, 고령농은 편안한 노후를 즐기며 청년농은 미래 영농의 꿈을 활짝 펼칠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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