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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적 그리고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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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전형진

한국농정 기고 | 2024년 2월 11일
전 형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중국사무소장)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농업부문은 생산과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하락한다. 일종의 시장경제 법칙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산요소들은 생산성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동일한 투입량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토지도, 노동도, 자본도 생산성이 낮은 농업부문에서 벗어나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제조업으로, 서비스업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1970년대 말 시작된 개혁개방의 대전환을 통해 중국이 거둔 경제성장 실적은 우리가 받았던 성장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뛰어넘는다. 흔히 ‘중국의 기적’으로 불린다. 정치체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되 경제체제는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대체한 초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실험하는 가운데 거둔 성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경제가 고속 성장을 구가한 결과 농업부문의 지위는 어떻게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칙에 예외는 없었다. 1980년부터 2022년까지 42년에 걸쳐 연평균 9.1%씩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동안 생산과 고용에서 농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9.6%와 68.7%에서 7.3%와 24.1%로 대폭 감소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농업부문의 위상 하락은 생산과 고용이 다소의 시간 차이를 두고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하는 데 비해 중국은 그 괴리가 비교적 크다. 이러한 비전형적인 패턴은 추격 성장을 빌미로 인위적으로 자원을 공업부문에 집중 배분하고 호적제도를 통해 도농 간 노동력 이동을 제약했던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의 유산이다. 도농 분리에 기초한 호적제도는 체제전환 이후에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농촌노동력의 도시 이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중국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는 한 아시아농업의 특성을 공유한 우리가 경험했던 경로를 따라 농업부문의 위상은 더욱 약화되고 결국 우리나라 수준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경제체제에서 한 국가의 농업부문은 성장과 발전이 온전히 시장에 내맡겨진다면 시장경제 법칙에 따라 소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업부문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를 공급하는 데다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공익적 가치를 제공하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하나같이 농업부문을 시장에만 맡겨 놓지는 않고 지원하고 보호하는데 진심이다. 고속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중국의 농업부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앞서 성장하고 발전했던 우리가 이미 직면했거나 현재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농 간 소득 격차 확대, 농업노동력 부족에 따른 노동비용 상승과 중간 투입재 증가로 인한 고비용 생산구조 고착화 및 농업부가가치율 하락, 농촌지역의 노령화·공동화 심화 등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들이다.


농업부문의 위상 하락 그리고 그에 따른 농업농촌의 소멸 위기에 맞서기 위해 중국이 꺼내든 카드는 농촌진흥전략이다. 논리적 기반도 마련했다. 이른바 공업반포농업론(工業反哺農業論)이다. 경제개발 초기에 약자인 공업부문이 농업부문으로부터 자본과 노동을 지원받아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고, 그리고 그 결과 공업화가 실현되었다면 이제 공업부문이 약자로 변한 농업부문에 과거에 베풀었던 은혜에 보답하고 도시는 농촌을 지원해 공업과 농업, 도시와 농촌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것 또한 보편적인 경향이라는 논리다. ‘반포지정(反哺之情)’의 함의를 빌어 끌어낸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해 중국은 오늘도 농촌진흥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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