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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짐 떠넘기는 양곡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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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한두봉

매일경제 기고 | 2024년 5월 14일
한 두 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과 농수산물유통안정법 개정안(농안법)은 한국 농업 문제를 심화시키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모럴 해저드' 법안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이며, 농안법은 농산물 값이 기준치 미만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우리 농업이 직면한 위기는 복합적이다. 농사를 지어도 타산이 맞지 않으니 농업에 신규 인력이 진입하지 않는다. 2023년 농가 수가 99만가구로 100만가구 이하로 떨어졌고, 농촌 소멸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식생활의 변화는 농산물 수요에 큰 영향을 준다. 쌀 소비 감소는 가격을 떨어뜨려 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농업소득을 높이려면 수요에 맞게 농산물 생산을 조정해야 한다.


결국 우리 농업이 당면한 과제는 쌀 공급과잉 해결과 농업소득 증대, 농산물 가격 안정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정안대로 정부가 과잉 공급된 쌀을 전량 매입하고, 낮은 농산물 가격을 보전해준다고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쌀 의무매입제와 차액보전제는 쌀과 특정 농산물의 초과 공급을 심화시킬 것이다. 쌀이 남아도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84년 130.1㎏ 이후 39년 연속 감소 추세다.


이렇게 거스를 수 없는 식생활 변화를 무시하고 생산을 늘리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다. 가격 하락으로 농가소득이 줄어 농촌 소멸이 가속화되고 청년은 농업을 외면할 것이다. 잘못된 법안으로 농업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 국가 재정도 낭비될 수밖에 없다. 소비되지 않는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 후 저가의 사료용이나 무상 해외 원조로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도 또 써야 한다. 쌀 소비 감소 추세를 충분히 고려해 양곡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개정안에 포함된 '쌀 의무매입제'와 '농산물가격안정제'라는 명칭은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켜 국민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상은 농산물 가격 하락 시 농가소득을 지지하는 목표를 바탕으로 설계됐다.


미래 농업 발전과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을 왜곡시키는 가격 지지보다는 직접지불제, 수입안정보험과 같이 소득을 직접 보전하는 것이 적절하다. 농산물 수급과 연계된 이 같은 가격 지지 체계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제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은 시행하지 않는다. 시행하더라도 생산자가 과잉생산의 책임을 분담하게 하고 있다.


두 개정안은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개정안은 농산물 가격이 내려갔을 때 일시적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지만,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고려하지 못하는 구조다. 농가소득 증대와 전 국민 물가 부담을 낮출 수 있는 균형 있는 농정 설계가 필요하다. 농업 문제를 풀 때는 정책 간 상충을 최대한 줄이고 바람직한 시너지를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한 문제를 풀기 위한 단순한 해법은 더 큰 문제를 만든다. 미래세대를 위해, 정치 논리가 아닌 농업 발전을 위한 바른 정책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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